기게스는 원래 양치기였다.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살던 그가 어느 날, 우연히 동굴 속에서 반지를 하나 발견한다. 이상하게 생긴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자, 그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투명인간이 된 것이다. 그날 이후, 그는 왕비를 유혹하고, 왕을 살해하며, 결국 스스로 왕이 된다. 모든 것이 그에게 열렸다. 아무도 보지 않기 때문에.
플라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도덕성이 ‘감시’ 없이도 유효한지 묻는다. 법과 규범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여전히 선할 수 있는가? 아무도 보지 않으면, 우리는 악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가?
기게스의 반지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감시 카메라가 꺼지고, 이름 없는 댓글을 달 수 있고, 나의 실명이 노출되지 않는 공간이 있다면—과연 나는 선한 존재일 수 있을까? 누가 보지 않을 때 드러나는 내가, 진짜 나일지도 모른다.
요즘의 디지털 세계는 수많은 ‘기게스의 반지’를 허락하고 있다. 익명성, 탈실명화, 프라이버시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그 속에서 상처를 주고도 책임지지 않으며, 왜곡하고도 해명하지 않는다. 투명해졌다는 것은 곧, 윤리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반지는 한 사람의 ‘선의 의지’를 시험한다. 기게스가 왕이 되는 동안,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다만, 그가 멈출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는 자기 자신뿐이었다. 결국 반지의 힘은 중립적이다. 그 힘을 어떻게 쓰느냐는 순전히 인간의 몫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문할 수 있다. “나는 보이지 않을 때, 어떤 사람이 되는가?”
기게스는 반지를 이용해 권력자가 되었고, 절대반지의 소유자는 타락했다. 하지만 어떤 이는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선을 선택하고, 손해를 감수하고도 침묵하며, 끝까지 품위를 지킨다.
‘들키지 않을 자유’는 ‘버려지지 않을 양심’을 통해만 존속할 수 있다. 누구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조차 자신을 지키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부자이고, 진짜 어른이다. 기게스의 반지를 낀 손을 움켜쥘 것인가, 내려놓을 것인가—그 선택이 지금, 매일의 삶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진짜 윤리는, 투명해졌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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