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였다. 이익이 줄어들던 동네 카페가 원두를 더 싸게 바꾸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사장은 대신 물 관리와 원두의 추출 표준을 다시 잡았다. 물 한 잔의 온도를 고민하고, 커피 한 잔의 향을 설계한다.한 달 동안 마진은 더 낮아졌지만, 두 달 뒤 단골이 늘었고 세 달 뒤엔 아침 줄이 생겼다. 숫자는 늦게 따라왔다. 비전이 먼저 방향을 냈고, 마진은 그 뒤를 걸었다.
동네 빵집에 밀가루를 더 싸게 납품해주겠다는 전화가 왔다. 사장은 바로 계산기에 손이 갔지만, 곧 멈췄다. 그는 대신 반죽에 쓰는 물의 온도를 일정하게 맞추고, 발효 시간을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의 이익은 줄었지만, 빵의 맛은 분명해졌다. 한 달 뒤엔 학교 끝난 아이들이 줄을 섰고, 석 달 뒤엔 아침마다 빵이 먼저 동났다. 숫자는 늦게 따라왔다. 방향이 먼저였다.
우리는 자주 거꾸로 달린다. 오늘의 장부를 지키려다 내일의 가능성을 깎는다. 그러나 진짜 성공은 단기 마진의 합이 아니라 의미와 신뢰의 복리에서 만들어진다. 비전은 “무엇을 더할까”보다 “무엇을 버릴까”를 먼저 가르친다. 쉬운 이익, 어설픈 확장, 값싼 주목을 버리고, 내가 지키려는 가치를 남긴다. 그 가치가 사람을 데려오고, 사람은 시간을 데려온다. 시간은 신뢰를 키우고, 신뢰는 결국 숫자를 바꾼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체로 같은 방식을 택한다. “지금 돈이 되느냐”보다 “우리가 누구냐”를 먼저 묻는다. 가게 간판을 크게 바꾸기보다, 손님에게 건네는 한마디 인사를 바르게 세운다. 영상 동아리의 편집자라면 조회수 미끼 제목보다, 다음 주에도 보고 싶은 이야기를 고른다. 운동선수라면 팬서비스를 이유로 훈련을 대충 하지 않는다. 오늘의 박수는 시끄럽지만, 내일의 실력은 조용히 쌓인다. 그들은 조용한 것을 믿는다.
마진을 쫓지 말라는 말은 돈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마진은 체온계, 비전은 나침반이다. 체온계는 상태를 알려주지만 방향은 못 준다. 나침반은 방향을 알려주지만 한 걸음도 대신 걸어주지 않는다. 좋은 일꾼은 둘을 함께 쓴다. 하루의 매출을 기록하면서도, 그 매출이 어떤 약속에서 나왔는지 확인한다. “싸서 샀다”가 아니라 “여기여서 샀다”로 바꾸는 일, 거기에 시간이 붙고 신뢰가 붙는다. 그 신뢰가 언젠가 마케팅 비용을 줄여준다. 말하자면 가치가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드가 숫자를 만든다.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도 오해하지 말자. 디테일을 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가치에 맞게 디테일을 고른다는 뜻이다. 컵 뚜껑 하나를 골라도 환경을 생각한다면, 포장 문구 한 줄에도 약속을 새긴다. 고객에게 늦은 답장은 사과로 시작하고, 실수가 나면 변명이 아니라 해결로 마무리한다. 작은 선택이 모여 정체성이 되고, 정체성이 모여 길이 된다. 길이 생기면 속도는 나중에 붙는다.
당신은 계산기를 먼저 꺼내는가, 나침반을 먼저 꺼내는가. 오늘의 마진에 마음이 흔들릴 때, 내일의 약속을 떠올릴 수 있는가. 우리가 추구하는 비전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선택의 합이다. 그 합이 쌓이면 ‘진짜 성공’은 조용히 도착한다. 크게 오지 않아도 오래 남는다. 오래 남는 것이 결국 크게 된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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