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싸움의 기술진흙탕 속에서 꽃을 피우기 위한 변명, 혹은 다짐

당신은 그런 순간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맑고 투명하리라 믿었던 샘물에 누군가 흙 묻은 장화 발을 씻는 광경을 목격하는 순간 말이다. 순수한 열정과 선한 의지가 모여 더 나은 길을 모색하리라 기대했던 합의의 장이, 몇몇의 불순한 손들에 의해 하룻밤 사이 시정잡배들의 난장판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그 참담함을. 나는 최근 그 심연의 한가운데를 통과했다.

오랫동안 나는 믿어왔다. 진심은 통하며, 옳은 것은 결국 승리한다고. 과정의 순수함이 결과의 정당성을 담보하며, 묵묵히 원칙을 지키는 이들의 땀을 세상이 외면하지 않으리라고.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안일하고 순진한 이상이었는지, 이번의 경험은 내 멱살을 잡고 거친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가르쳐주었다. 그들이 ‘원칙’을 입에 올릴 때, 그들의 손은 이미 탁자 밑에서 비열한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대의’를 외칠 때, 그들의 눈은 다음 권력의 향배를 계산하기에 바빴다. 정치는 현실이다. 좋든 싫든, 인간이 모인 곳에는 역학 관계가 생기고, 그 역학을 지배하는 기술이 바로 정치다.

순수함만으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나의 사람들을, 우리가 함께 쌓아 올린 가치를, 그리고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저 너머의 목적지를 지켜낼 수 없다. 선의를 가진 이들이 정치적 무능과 현실 감각의 부재로 인해 판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순간, 그들이 지키려 했던 모든 것은 교활한 이들의 전리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The Children of Light and the Children of Darkness』에서 “인간의 정의를 향한 능력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지만, 불의를 향한 인간의 경향은 민주주의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통찰하지 않았던가.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공동체의 구조적 현실을 꿰뚫는다.

성서가 가르치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태복음 10:16)는 말씀이 이토록 절실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비둘기의 순결함만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순결함이 지혜의 갑옷을 입지 못할 때, 그것은 포식자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뿐이다. 뱀의 지혜란 무엇인가? 그것은 상황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상대의 수를 읽으며, 때로는 기꺼이 내 손을 더럽힐 줄 아는 현실적 감각이다. 목표한 선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더 큰 악을 막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피하지 않는 용기다.

물론 그 저변에는 양보할 수 없는 명분과 모두에게 이로운 실리가 함께해야 한다. 권모술수 자체를 즐기는 괴물이 되자는 말이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계가 이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사랑하는 공동체를 지키고 우리가 꿈꾸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이제 기꺼이 ‘정치적인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정치적인 문법으로 그들을 상대하고 이해관계를 셈하는 논리로 그들을 대할 것이다.

진흙탕에 발을 담그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그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가장 순결한 이상은, 가장 치열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증명할 때 비로소 빛난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고고하게 손을 등 뒤로 한 채, 모든 것이 권모와 술수에 능한 자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방관하겠는가, 아니면 기꺼이 싸움에 뛰어들어 당신의 가치를 지켜내겠는가? 나는 후자를 선택하려 한다.

가장 날카로운 지성은 가장 뜨거운 심장을 품을 때, 비로소 세상을 움직일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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