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의 걸음으로, 계곡을 파는 물처럼속도가 신이 된 시대에 느림의 가치를 묻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솝 우화가 하나 있다. 재빠른 토끼와 느린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흔히 토끼의 자만과 거북이의 성실함에 대한 교훈으로 읽는다. 하지만 이 우화의 더 깊은 곳에는 속도와 시간에 대한 두 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이 숨어있다. 토끼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단숨에 목표에 도달하려는 ‘속도의 신봉자’다. 그의 세계에서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만이 중요하며, 느림은 곧 패배와 동의어다. 반면 거북이는 묵묵히, 한 걸음씩,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과정의 순례자’다. 그의 세계에서는 매 순간의 꾸준함이 기적을 만들고, 인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거대한 ‘토끼들의 경주장’과 같다. 모든 것이 즉각적이길 요구한다. 즉석식품, 빠른 배송, 실시간 검색 순위,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되는 신화까지. ‘빨리빨리’는 어느새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주문이 되었고, 기다림은 견디기 힘든 고문이 되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더 빠른 길,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헤매며 조급함에 시달린다. 옆 사람이 나보다 앞서 나가는 것 같으면 불안에 잠 못 이루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더디면 금세 포기하고 다른 길을 기웃거린다. 우리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진보하는 것이라 착각하고, 느리고 꾸준한 걸음을 시대에 뒤처지는 것이라 폄하한다. 하지만 이 끝없는 속도 경쟁의 종착역에 과연 만족과 성취가 기다리고 있을까?

자연은 우리에게 인내의 가치를 말없이 가르쳐준다. 거대한 협곡을 깎아내린 것은 한순간의 거대한 폭포가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 쉼 없이 흘러내린 가느다란 물줄기다. 아름드리나무를 키워낸 것은 하룻밤의 벼락이 아니라, 수십 년간 묵묵히 햇빛과 비를 받아들인 세월이다. 인내와 끈기는 결코 수동적인 기다림이나 무기력한 버티기가 아니다. 그것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눈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자신의 걸음을 계속 이어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힘이다. 조급함이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해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단거리 경주라면, 인내는 장기적인 비전을 품고 에너지를 현명하게 분배하는 마라톤과 같다.

어떤 분야에서든 진정한 대가(大家)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성공이 번뜩이는 재능이나 운 좋은 기회 한 번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들의 위업 뒤에는 언제나 지루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인고의 시간이 숨어있다. 수만 번의 실패를 거듭한 발명가의 끈기, 매일 똑같은 기본기를 수천 번씩 반복하는 연주가의 인내. 세상은 화려한 결과물에만 환호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결과물을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과정 속에 있다. 조급함은 우리를 영원한 아마추어로 머물게 하지만, 인내와 끈기는 평범한 우리를 비범한 전문가로 빚어내는 위대한 조각칼이다.

우리는 모두 토끼의 빠른 발을 부러워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가장 빠른 길은 종종 가장 먼저 지쳐 쓰러지는 길이며, 화려한 출발이 반드시 영광스러운 도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당신이 진정으로 멀리 가길 원한다면, 세상을 향해 소리치며 달려 나가는 토끼가 아니라, 자신의 호흡과 땅의 감촉을 느끼며 묵묵히 걸어가는 거북이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가장 빠른 길은 종종 가장 먼저 지치는 길이다. 멀리 가는 사람은 묵묵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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