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라는 지도, 삶이라는 목적지우리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가, 돈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능력. 고대 그리스 신화 속 미다스 왕(King Midas)은 신에게 이 매혹적인 선물을 받고 환희에 찼다. 그는 부(富)의 정점에 올랐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축복은 이내 가장 끔찍한 저주가 되었다. 탐스럽던 과일도, 향기로운 포도주도 그의 입에 닿는 순간 차가운 금속으로 변했다. 심지어 사랑하는 딸을 끌어안자, 딸은 숨결 없는 황금 조각상이 되어버렸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지만, 정작 삶을 살아있게 하는 단 하나도 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미다스의 비극은 돈을 목적 그 자체로 삼았을 때, 삶이 어떻게 질식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되고도 강력한 우화다.

현대 사회는 수많은 미다스 왕을 길러낸다. 우리는 ‘얼마를 가졌는가’로 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데 익숙하고, 통장 잔고의 숫자를 늘리는 것을 성공의 유일한 척도로 삼도록 끊임없이 부추김을 당한다. 돈은 분명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도구이자, 더 나은 삶을 위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유용한 수단이다. 안락한 집, 양질의 교육, 소중한 사람들과의 여행. 이 모든 것은 돈이라는 수단이 있을 때 더 용이하게 실현된다. 문제는 우리가 언제부턴가 이 수단을 목적지와 혼동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삶이라는 여정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지도를, 지도 그 자체를 모으는 데 혈안이 된 탐험가처럼 말이다.

돈이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리의 삶은 기묘한 역설에 빠진다. 더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해 돈을 벌지만, 정작 돈에 얽매여 단 하루의 자유도 누리지 못한다. 가족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지만, 일에 치여 가족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위해 뛰는 동안, 정작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는 시간, 관계, 건강, 평온과 같은 본질적인 가치들을 너무나 쉽게 저당 잡힌다.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재산은 바닷물과 같다.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고 말했다. 돈을 목적으로 삼는 삶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의 연속일 뿐, 결코 만족이라는 오아시스에 닿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돈이라는 강력한 힘 앞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가? 해답은 ‘왜(Why)’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데 있다. 나는 왜 돈을 벌려고 하는가? 이 돈으로 궁극적으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한 사람에게 돈은 충실한 하인이 된다. 그에게 돈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가 된다. 하지만 이 질문이 없는 사람에게 돈은 가혹한 주인이 되어 그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끝내는 황폐하게 만든다.

우리는 ‘부유한 사람’이 되는 것과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부유함이 소유의 양으로 측정된다면, 풍요로움은 경험의 질로 측정된다. 당신의 돈이 당신의 삶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목적지를 향해 지도를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지도 더미 아래에 깔려 숨 막혀 하고 있는가. 미다스 왕이 뒤늦게 깨달았던 것처럼, 진정한 부는 황금을 만지는 손이 아니라 사랑하는 딸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손에 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에 집착하는 동안, 우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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