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저마다의 스피커를 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거대한 소음의 강물을 이룬다. 우리는 이 소란스러운 흐름 속에서 더 큰 목소리로 외쳐야만 살아남는다고 믿는다. 자기주장이 미덕이 되고, 침묵이 무능으로 여겨지는 시대. 하지만 모두가 말하는 이 세상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은 누가 듣고 있는가? 역설적이게도 가장 지혜로운 자는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깊이 듣는 사람이었다. 진정한 힘은 입이 아닌 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말하기는 ‘채우는’ 행위이고, 듣기는 ‘비우는’ 행위다. 말을 할 때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경험으로 세상의 빈 공간을 채우려 한다. 그것은 자아를 확장하고 존재를 증명하려는 본능적인 욕구다. 반면, 듣기는 자신을 비워내고 타인을 위한 공간을 내어주는 일이다. 나의 판단과 선입견이라는 가구를 잠시 밖으로 들어내고,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을 수 있도록 텅 빈 방을 내어주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진정한 경청은 단순한 수동적 수용이 아니라, 가장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환대(hospitality) 행위다. 잘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속마음을 발견하고, 엉킨 실타래 같던 생각의 가닥을 찾아내지 않는가.
우리는 너무나 쉽게 듣고 있다고 착각한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박할 논리를 세우고, 그의 고민 속에서 내가 해줄 ‘조언’을 검색하며, 그의 경험을 나의 경험과 비교하며 다음 할 말을 준비한다. 그것은 듣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것에 불과하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진정한 경청을 ‘공감적 경청(empathetic listening)’이라 부르며, 상대방의 말뿐만 아니라 그 말에 담긴 감정과 의미까지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관계 치유의 핵심이라 말했다. 이는 상대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것과 같다.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의 마음으로 고통을 느끼려는 의지 없이는 결코 그의 세상에 들어갈 수 없다.
말의 홍수 속에서 진실은 종종 침묵과 여백에 깃든다. 말과 말 사이의 짧은 침묵, 힘주어 말하는 단어, 머뭇거리는 어조, 떨리는 목소리와 흔들리는 눈빛. 진정으로 듣는 사람은 이 소리 없는 언어들을 놓치지 않는다. 그들은 상대의 입이 하는 말이 아니라, 그의 온 존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러한 깊은 들음의 실천은 관계를 변화시키는 기적을 낳는다. 나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단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깊은 위로와 함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는다.
결국 듣는다는 것은 지혜를 얻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세상의 모든 책과 스승이 가르쳐주는 지식보다, 한 사람의 인생이 녹아든 진솔한 이야기를 깊이 듣는 것이 더 큰 깨달음을 줄 때가 많다. 당신의 세계를 넓히고 싶은가? 그렇다면 더 많이 말하려 애쓰기보다, 더 깊이 듣는 연습을 시작하라. 당신이 기꺼이 자신을 비우고 귀를 열 때, 세상은 당신에게 그동안 들려주지 않았던 비밀스러운 속삭임을 시작할 것이다.
가장 시끄러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귀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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