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기독교, 그 눈부신 변신의 역사한국 기독교회는 '재벌(Chaebol)'이 되었다.

주식회사 기독교, 그 눈부신 변신의 역사<span style='font-size:18px; display: block; margin-top:0px; margin-bottom:4px;'>한국 기독교회는 '재벌(Chaebol)'이 되었다.</span>

미국 상원의 채플 목사를 지낸 리처드 헬버슨(Richard C. Halverson)은 기독교의 여정을 두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 제도가, 유럽으로 넘어가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건너와 기업이 되었다.” 이 문장은 복음이라는 무형의 ‘서비스’가 각 시대와 지역이라는 ‘시장’에 조우하며 어떻게 스스로를 변화시켜 왔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비즈니스 분석 보고서처럼 읽힌다. 영적인 메시지가 생존과 번영을 위해 펼쳐온 천의 얼굴, 그 변신의 연대기다.

헬레니즘의 사상가들을 만난 교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로 복음을 변증하는 ‘철학 컨설팅’을 시작했다. 로마 제국의 품에 안기면서는 행정 시스템과 법률 체계를 도입해 거대한 ‘제도 프랜차이즈’로 거듭났다. 유럽의 심장부에서는 예술과 건축, 음악과 일상을 지배하는 독점적 ‘문화 콘텐츠 사업자’로 군림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본주의의 신대륙 미국에 상륙한 교회는 성장, 효율, 마케팅을 앞세운 ‘주식회사’가 되었다. 목사는 전문 CEO가 되었고, 신도는 충성스러운 고객으로 관리되었다. 구원의 메시지는 때로 자기 계발 세미나처럼 포장되어 팔려나갔다.

그렇다면 이 유구한 변신의 역사는 한국에서 어떤 새로운 장을 맞이했을까? 헬버슨의 통찰에 한 줄을 덧댄다면, 그것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한국으로 건너와, 교회는 ‘재벌(Chaebol)’이 되었다.” 단순한 기업을 넘어,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족벌 경영 체제를 갖춘 거대 복합기업 말이다. 본업인 ‘예배’ 외에도 부동산, 교육, 의료, 미디어 등 각종 자회사를 거느리며 몸집을 불렸다. 교회의 성장은 영적 성숙이 아닌, 출석 교인 수와 헌금 총액, 교회 건물의 평수 같은 재무제표 상의 숫자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구령 10만”, “선교 제일” 등의 구호는 연간 실적 보고서의 첫머리를 장식할 법한 공격적인 마케팅 슬로건이 되어, 영혼의 가치를 숫자로 환원시키는 데 앞장섰다. 대기업이 된 교회의 풍경은 낯익다. 브랜딩·캠페인·KPI, CRM과 고객 여정 지도, 의사결정은 ‘본사’에서, 지점은 일사불란한 주일 운영. 회계는 복잡해지고, 설교는 슬로건이 되고, 목양은 이벤트가 된다. ‘은혜’는 감동 지표가 되고, ‘사역’은 봉사 인력 관리가 된다. 기능은 풍성해졌지만, 근본 질문은 희미해졌다. “우리, 왜 모이나?”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창업주 2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재벌의 행태와 놀랍도록 닮았다. 교회의 분열과 갈등은 종종 핵심 사업부를 둘러싼 ‘주주’ 간의 암투를 연상시킨다. ‘영혼 구원’이라는 핵심 가치는 때로 ‘시장 점유율 확대’라는 목표 아래 희미해진다. 우리는 영혼의 구원이라는 핵심 사업을 잊은 채, 부동산과 교육 사업에만 열을 올리는 주주총회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거대한 신앙 재벌의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믿음은 그저 회사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은가?

문제는 기독교식 기업 논리가 믿음의 문법을 잠식할 때다. 성장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우리가 되돌려야 할 단어는 ‘작음’과 ‘가까움’이다. 복음은 거대한 시스템의 집합명이 아니라, 작은 관계의 다른 이름이다. 건물의 크기를 줄이고, 이름의 톤을 낮추고, 이웃과의 거리를 좁히자. 그때 교회는 다시 ‘동사’가 된다—움직이고, 나누고, 붙드는 말.

물론 조직과 시스템은 메시지를 담아내는 필수적인 그릇이다. 그러나 그릇이 너무 화려하고 무거워져 내용물을 압도하고 변질시키는 순간, 본질은 사라진다. 그리스의 철학, 로마의 제도, 유럽의 문화, 미국의 기업, 그리고 한국의 재벌로 이어지는 교회의 화려한 변신은 과연 성공적인 현지화 전략의 역사일까, 아니면 본질을 잃어버린 인수합병의 기록일까. 웃으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질문이 남는다. 교회가 기업이 될 때, 신앙은 슬로건이 되고 이웃은 고객이 된다. 기독교가 다시 동사(움직임)로 돌아갈 때, 예수없는 예수교회는 신앙의 모습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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