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가 끝나갈 무렵 공기는 약간 굳어 있었다. 누군가는 절차를 말했고, 누군가는 사람을 말했다. 저마다 옳은 말을 했지만, 말들 사이에는 얇은 막 같은 불신이 끼어 있었다. 며칠 전 같은 식탁에서 함께 웃던 온기와는 다른 온도였다. 밥상에서는 ‘우리’였고, 의제 앞에서는 ‘각자’였다.
한 구성원을 떠올릴 때, “쓰기 좋은 연장”이라는 비유가 겹쳐졌다. 연장은 위험하지도 유능하지도 않다. 그것을 쥔 손의 숙련과 현장의 맥락이 결과를 바꾼다. 원칙을 앞세운 태도는 어떤 이에게 버팀목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된다. 도구를 탓하기보다 쓰는 법을 묻는 편이 관계를 덜 해친다.
오해는 대개 정보의 부족보다 해석의 속도에서 생긴다. 먼저 판단이 나가고, 나중에 사실이 따라온다. 그래서 절차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존재한다. 다만 절차가 사람을 압도하면 옳은 말도 차갑게 들리고, 사람에 기대어 절차를 무시하면 선의도 사적 이익으로 의심받는다. 형식으로 존중을 보이고 태도로 온기를 보태는 일이 균형의 핵심이다.
신뢰는 공식 문서에 적히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문서의 유효기간을 결정한다. 공지의 한 줄, 회의의 한마디, 응답의 리듬이 신뢰의 체온을 만든다. 말의 정확성과 말의 질감이 함께 있을 때 관계는 오래 간다. 합의는 문장으로 끝나지만 동행은 태도로 이어진다. 절차가 방향을 지키고 사람이 속도를 맞춘다.
식탁의 ‘우리’가 의제 앞에서도 유지되려면, 우선순서를 다시 세워야 한다. 먼저 사람을 인정하고, 다음에 역할을 조율하고, 마지막에 문장을 확정한다. 이 순서가 뒤바뀌면 옳음은 남고 함께함은 빠진다. 우리는 일을 처리하는 팀이 아니라 일을 통해 관계를 보존하는 사람들이다. 결과보다 방식이 오래 남고, 방식보다 태도가 더 멀리 간다.
한때의 긴장은 나중에 돌아보면 좋은 기준이 된다. 감정이 앞서던 순간을 떠올리며 말의 속도를 반 박자 늦춘다. 확인되지 않은 해석을 잠시 보류하고, 서로의 강점을 작업 도구처럼 인정한다. 신뢰는 합의의 부산물이 아니라 태도의 축적이다. 오늘의 태도가 내일의 구조가 된다.
신뢰는 문장으로 쓰지 않고, 태도로 쌓는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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