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하다 보면 열에 아홉은 거간꾼들이다.”
이 말은 현장에서 뛰는 이들에게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쓰라린 통계에 가깝다. 그들은 화려한 명분과 거대한 네트워크를 자랑하며 접근한다. “우리는 가족이다” “이제 형이라고 불러라” “우리는 한 배를 탔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재계 인사와의 차한잔,” “정부 공식 파트너십,” “엄청난 기회.” 이들의 언어는 언제나 거창하지만, 그 실체는 안개처럼 모호하다.
그들은 자신을 ‘연결자(Liaison)’ 혹은 ‘중재자(Intermediary)’라 부른다. 하지만 이 세련된 포장은 종종 내용물의 부실함을 감추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이들의 제안은 표면적으로 ‘협력’과 ‘파트너십’을 강조하지만, 그 구조를 해체해 보면 불균형한 설계가 드러난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거간형 인간’, 혹은 ‘거간군’이라 불린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실체가 아닌, 상대방이 가진 자산을 마치 자신의 신용처럼 운용한다. 본인은 단 한 푼도 쓰지 않지만, 상대방의 브랜드와 이름, 네트워크와 신앙을 ‘레버리지’라는 이름으로 빌려 쓴다.
리스크 전가의 기술
이들의 핵심 전략은 명확하다. “자산·신뢰도를 레버리지로 쓰고, 실질 리스크는 모두 (우리) 측에 전가되는 구조” 를 설계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자본이나 실체를 투입하지 않는다. 대신, 당신의 브랜드, 자본력, 그리고 지난 세월 쌓아 올린 신뢰도를 담보로 게임에 참여하려 한다. “투자 검증용 자료,” “공식 프로필,” “컨셉 노트” 를 끈질기게 요구하며 당신의 패를 먼저 확인하려 든다. 그들은 ‘무형 자산(관계망, 정부 연줄)’ 을 이야기하며, 당신에게는 ‘유형 자산(투자금, 인프라)’ 을 부담시키는 형태다.
거간형은 말을 고르지 않는다. “당신만 믿는다”는 말로 상대를 우선 숭배자로 만든 뒤, 다음 단계에서 “조금만 더 버텨 달라”고 말을 바꾼다. 그들의 시간은 ‘나중’으로만 흐른다. 그 ‘나중’은 결코 오지 않는다. 오는 것은 늘 ‘더 큰 빚’과 ‘더 흐릿한 경계’뿐이다. 리스크는 온전히 당신의 몫이고, 성공의 과실은 불투명한 ‘향후’로 미뤄진다.
신뢰를 이용하는 방식
가장 교묘한 방식은 사적 인연을 공적 자원처럼 활용하는 행태다. “종교, 학연, 지연 등의 인연을 빌미로 실무적 자원을 빌리려는 형태” 는 이들의 단골 메뉴다. “우리가 같은 신앙(혹은 학교, 고향)이지 않습니까.” 이 한마디는 무형의 압박이자, 신뢰를 이용한 무자본 투자의 시작이다. 순수한 공동체의 신뢰가 비즈니스 브로커의 외교적 수사(修辭)와 실무적 자원을 빌리려는 도구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그들은 언제나 미래형으로 말한다. “‘향후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불확실한 미래 약속” 에 집중한다. 수익 구조, 재무 실체, 검증 가능한 실적(Track record)은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결국 명분은 ‘국가 간 협력’이지만, 실질은 ‘무자본 파트너십을 가장한 자원 의존’이다.
거간형의 본질: 실체가 아닌 프레임으로 말하는 사람
거간형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가진 실체보다 말의 구조로 상대를 설득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언어는 대부분 “연결”과 “기회”와 “상징”이다. 그러나 그 언어 속에 빠져 있는 건 ‘내가 얼마나 감수할 수 있는가’, ‘내가 무엇을 직접 실행할 수 있는가’다.
그들은 ‘파트너십’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무자본 중개 구조를 설계한다. 겉으로는 ‘함께 하자’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당신이 먼저 움직여달라’는 요청이다.
거간꾼의 춤에 대응하는 법
그렇다면 이 ‘거간’의 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감정적 의리나 신앙적 동질감에 호소할 때, 우리는 더 냉정하게 구조를 봐야 한다. 그들을 경계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서류를 요구하고, 리스크를 나누고, 미래를 나누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한 배를 탔다”는 말에도 반드시 “배의 소유주는 누구인가”라고 되물어야 한다. 거간군은 그 질문을 가장 싫어한다. 그 질문이 나오는 순간, 그들은 이미 다음 문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
방어벽을 세운다: 개인적 약속이 아닌 ‘조직의 공식 검토’라는 방어벽을 세워야 한다. “흥미로운 제안이니, 우리 본사(혹은 공식 채널)에서 검토 후 연락하겠다.” 이로써 개인 간의 신뢰 문제는 조직의 공식 프로세스 문제로 환원된다.
-
자료를 통제한다: 자료 제공은 최소화한다. 투자 규모나 ROI 같은 핵심 정보 대신, “비전과 원칙을 설명하는 브로셔 수준의 요약본” 정도에서 멈춰야 한다. 당신의 자산 규모를 노출하는 것은 그들에게 레버리지의 기회만 줄 뿐이다.
-
완곡하게 차단한다: 공동 플랫폼이나 로비 회사 설립 같은 제안은 “흥미롭지만, 법적·윤리적 구조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 며 완곡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결국 이들은 투자자가 아니라, 투자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화려한 명분에 현혹되어 당신의 실질적 자원을 내어주는 순간, 당신은 이미 게임에서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연결의 언어에 속지 마라, 실체의 책임으로 분별하라
세상에는 ‘실행하지 않는 설계자’가 있고, ‘투자하지 않는 투자자’가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리스크 없이 수익만을 분배받으려는 거간군이 있다. 그들은 당신의 이름을 써서 신뢰를 얻고, 당신의 자산을 빌려 구조를 만든다. 그러나 일이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은 오롯이 당신의 것이 된다.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 말보다 구조를 보고, 인연보다 실행력을 보며, ‘함께 하자’는 말 속에 담긴 분배 구조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화려한 말로 문을 열려는 자는, 당신의 자원으로 그 문을 통과하려 할 뿐이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Job談 –브랜딩, 마케팅, 유통과 수출 그리고 일상다반사까지 잡담할까요?
E-mail: brian@hyuncheong.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