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서 배운 것은 길을 보여준다. 현장에서 반복한 것은 발걸음을 만든다. 그러나 방향을 바꾸고, 몸에 새기는 일은 대개 실수와 실패가 맡는다. 배움의 체감 비율을 굳이 나누자면 이렇다. 이론 10%, 실천 20%, 실수·실패 70%. 과장이 아니다. 좌표를 찍어 주는 건 이론이고, 지형을 익히게 하는 건 실천이며, 지도를 고쳐 그려 주는 건 실패다.
이 기묘한 비율은 성공 신화에 열광하고 효율을 숭배하는 현대 사회의 통념에 정면으로 맞선다. 서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들은 언제나 ‘성공하는 법’을 다루지, ‘실패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왜 성공 사례(Best Practice)가 아닌 실패 사례, 혹은 고통스러운 실수에서 더 깊이, 더 많이 배우는 존재일까?
이론은 언어로 세계를 압축한다. 개념은 빛나는 문장처럼 우리를 설득하지만, 미세한 마찰과 변수를 품지 못한다. 그래서 실천이 필요하다. 손을 대보고, 몸을 써보는 동안 문장은 사례로 변한다. 그럼에도 가장 큰 도약은 실수에서 온다. 잘못된 가정이 드러나고, 미처 보지 못한 전제가 튀어나오며, 시스템의 약점이 얼굴을 드러낸다. 실패는 ‘무엇이 틀렸는지’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틀렸는지’를 보여준다. 학습의 좌표 원점이 바뀐다.
이론은 지도와 같다. 그것은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알려주지만, 길 위에 깔린 자갈의 날카로운 감촉이나 비 온 뒤의 웅덩이 깊이를 느끼게 하지는 못한다. 실천은 그 지도를 들고 직접 걷는 행위다. 걸음이 반복되면 발에 익숙한 감각이 더해지고 우리는 능숙해진다.
하지만 실패는, 그 길 위에서 예상치 못한 낭떠러지를 만나 발을 헛디딘 경험이다.
그 추락의 순간, 시간은 찰나이거나 영원처럼 늘어난다. 온몸의 감각이 비명처럼 깨어난다. 심장이 발끝으로 떨어지는 감각, 손바닥을 파고드는 땀, 아찔한 현기증. 우리는 그 짧은 순간에 왜 떨어졌는지, 어디를 잘못 짚었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 필사적으로 복기(復棋)한다. 이 고통스럽고 생생한 감각적 각인(Imprint)이야말로 70%의 배움을 구성하는 핵심이다.
성공은 종종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고, 기존의 방식을 맹신하게 한다. 반면 실패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우리가 서 있던 기반 자체를 의심하게 한다. 그것은 안락한 일상의 루틴을 부수고, ‘왜?’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하는 가장 강력한 망치다.
우리는 넘어지며 걷는 법을 배웠다. 어른이 되어도 원리는 같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빨리 일어나 더 정확히 걷는 사람이 단단해진다. 이론과 실천은 배움의 전주(前奏)이고, 실수와 실패는 본곡(本曲)이다. 배움을 완성하려면, 본곡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문화는 실패를 부끄러운 낙인처럼 다룬다. 이력서에는 성공한 프로젝트만 나열되고, 소셜 미디어는 가장 화려하게 성취한 순간만을 전시한다. 가장 거대한 학습의 자산인 70%의 교실은 그렇게 수면 아래로 숨겨진다. 우리는 가장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스스로 폐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조언은 때로 공허하다. 넘어지는 것은 본능적으로 두려운 일이다. 대신, 당신의 실수를 ‘기록’하라고 권하고 싶다.
오늘 당신이 저지른 작은 실수, 혹은 당신을 낙담시킨 큰 실패를 조용히 종이 위에 적어보라. 감정을 배제하고, 그 일이 일어난 원인과 과정을,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이 느꼈던 날것의 감각을 담담히 복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답 노트가 아니라 ‘성장 일지(Growth Log)’다. 깨진 찻잔의 조각을 맞추듯, 우리는 실패의 파편들을 모아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한 ‘나’를 재구성한다.
이론은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고, 실천은 우리를 능숙하게 만든다. 하지만 실패는, 우리를 깊어지게 한다. 날카로운 파편에 베인 상처가 아물며 그 자리에 새살이 돋듯, 그렇게 우리는 자라난다.
가장 아팠던 곳에서 가장 선명한 길이 열린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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