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자는 아는 자를 이긴다열정은 지식보다 깊다
지자불여호지(知者不如好之者)는 아는 자보다 좋아하는 자가 낫다는 뜻으로, 《논어》에서 공자가 남긴 말이다. 지식은 흉내낼 수 있지만, 좋아함은 내면에서 비롯된다. 좋아하는 마음은 깊은 몰입과 지속을 가능하게 한다.
지자불여호지(知者不如好之者)는 아는 자보다 좋아하는 자가 낫다는 뜻으로, 《논어》에서 공자가 남긴 말이다. 지식은 흉내낼 수 있지만, 좋아함은 내면에서 비롯된다. 좋아하는 마음은 깊은 몰입과 지속을 가능하게 한다.
선뜻한 바람이 스칠 때면
괜히 누군가가 떠오른다.
오래 앉아 차를 식히며 말이 길어지고,
때때로 침묵이 더 길어지는 자리.
가을은 대화가 그립고 만남이 사무치는 계절이다.
오늘은 안부 한 통을 건네볼까.
그 한마디가,
이 계절의 선함이 머무는 방식일지 모르니.
‘들키지 않을 자유’는 ‘버려지지 않을 양심’을 통해만 존속할 수 있다. 누구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조차 자신을 지키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부자이고, 진짜 어른이다. 기게스의 반지를 낀 손을 움켜쥘 것인가, 내려놓을 것인가—그 선택이 지금, 매일의 삶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진짜 윤리는, 투명해졌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하루 세 끼 먹는 밥보다 평생을 함께하는 마음이 더 깊다. 왕후의 밥처럼 보이고 싶은 유혹이 아니라, 걸인의 찬처럼라도 진심을 담고 싶은 태도. 모양보다 내용, 속도보다 깊이, 광채보다 체온. 그런 것들이 결국 오래 남고, 오래 기억된다.
정치인의 성범죄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성욕과 지배욕은 인간 뇌의 동일한 보상 회로에서 작동하며,
권력은 공감 능력을 마비시키고, 통제보다 충동을 합리화하게 만든다.
성범죄는 권력 구조가 허용한 ‘내면의 본능’이자,
정치라는 제도가 가진 인간학적 결함의 발현이다.
우리는 이제 정치를 제도보다,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사랑은 시작의 조건이지만
지속의 조건은 아니다.
같은 사람과 계속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사랑보다 더 단단하다.
사랑은 줄어들지만,
사랑하려는 태도는 자란다.
오히려 줄어든 감정이후부터 진정한 사랑은 시작된다.
천고마비(天高馬肥)는 원래 북방 유목민의 침입 시기를 경계하는 말이었으나, 오늘날에는 가을의 풍요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풍요는 늘 절제와 균형을 요구한다. 하늘이 높아지는 계절, 인간의 마음은 오히려 낮아져야 한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은 앎과 행함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명나라의 철학자 왕양명이 강조한 개념이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참된 지식은 반드시 삶 속에서 실천될 때 그 의미를 갖는다.
갖고 싶은 것으로 채우는 삶은 늘 허기지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으로 채우는 삶은 충만하다. 진짜 부자란, 욕망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만드는 사람이다. 오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삶은 소비가 아니라 행위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갖기보다 하기가 많을수록, 사람은 조용히 부자가 된다.
일은 더 이상 말 잘하는 사람이 주도하지 않는다.
흐름을 엮고, 역할을 정렬하며, 맥락을 통합하는 사람.
비전–설계–실행을 하나로 묶는 시너지스트,
그는 보이지 않지만 일의 진짜 구조를 바꾸는 사람이다.
그가 만드는 프로시저는 곧 흐름이며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