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부터 시간을 느꼈을까?
아마도 어느 먼 옛날, 사냥을 나선 한 무리의 사람들 중 누군가가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동쪽에서 피어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빛은 어제도 있었고, 그 전날도 있었어. 하지만 똑같지 않아.”
태양은 매일 떠오르고 지지만, 어제와 오늘의 색은 미묘하게 달랐다.
저녁놀은 때로는 붉게 타올랐고, 때로는 연보랏빛으로 스러졌다.
밤하늘의 달은 사흘 전보다 조금 더 둥글었고, 또 다른 사흘 뒤에는 가느다란 초승달이 되었다.
강가의 버드나무는 어느 날 갑자기 연둣빛 새잎을 틔웠다가,
몇 달 뒤에는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 서 있었다.
인간은 그 변화를 ‘흐름’으로 보았고,
그 흐름을 기억하려고 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이 변화는 제멋대로가 아니라, 일정한 리듬으로 반복된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곧 하나의 질문을 낳았다.
“시간은 무엇인가?”
시간은 신의 질서였다
고대의 사람들에게 시간은 단순히 흘러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과 땅, 별과 바람이 함께 연주하는 거대한 음악이었다.
그 리듬 속에서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강은 불어나며, 사냥감은 떼를 지어 이동했다.
사람들은 이 보이지 않는 리듬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신의 질서라고 믿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태양신 샤마시와 달의 여신 신(Sin)이 하늘을 돌며
낮과 밤, 달의 주기를 만들었다고 전해졌다.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가 매일 하늘을 여행하며 낮과 밤을 나누고,
계절의 순환을 이끌었다.
그리스에서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우주의 흐름을 지배했고,
그의 아들 제우스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시간은 곧 신의 힘이었고,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달력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도구 중 하나였다.
그것은 단순한 날짜표가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생존의 비밀문서였다.
고대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에서는 달의 주기를 기준으로 한 음력 달력을 사용했다.
달이 차고 기우는 리듬에 맞춰 농사와 축제, 제사의 시기를 정했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의 범람과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태양력을 만들었다.
그들의 1년은 365일이었다.
달력 속에는 신화가 깃들어 있었다.
달의 여신은 매일 하늘을 여행하며 얼굴을 바꾸었고,
태양신은 계절을 이끌며 세상에 풍요와 휴식을 주었다.
달력은 곧 하늘과 인간의 계약서였다.
계절의 변화는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자연 현상이었다.
그리스 신화 속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와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는
계절의 순환을 설명한다.
저승의 왕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데려가자,
데메테르는 슬픔에 잠겨 땅을 메마르게 했다.
그러나 딸이 지상으로 돌아오면
대지는 다시 꽃피고 풍요로워졌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은 이렇게 모녀의 이별과 재회로 해석되었다.
중국에서는 사계절을 다스리는 사방의 신,
청룡(봄), 백호(가을), 주작(여름), 현무(겨울)가 있었다.
이들은 하늘의 별자리와 계절의 변화를 이끌었다.
북유럽에서는 거인 스카디와 여신 프레이야가
겨울과 여름을 대표했다.
계절의 변화는 신들의 싸움과 화해,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로 전해졌다.
신화 속에서 시간은 단순히 숫자로 셈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의 의지와 인간의 삶이 맞닿는 지점이었다.
시간의 시작은 곧 세계의 시작이었고,
달력과 계절의 변화는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신화는 시간의 흐름을 신성한 질서로 해석했고,
인간이 그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함을 일깨웠다.
오늘날 우리는 원자시계로 시간을 재고,
전자 달력으로 일정을 관리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고,
축제를 준비하며, 새해를 기다린다.
시간의 신비와 순환,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여전히 신화적 상상력 속에 살아 있다.
시간과 계절의 신화는 오늘도 이렇게 속삭인다.
“모든 것은 흐르고, 다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