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거운 일상을 담백한 일상이라 부르는 곳에서

나상미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땐 시간의 흐름이 조금 이상했어요. 저녁 8시만 되면 졸리고
자연스럽게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게 되더군요. 별로 한 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그게 너무너무 신기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쬐는 햇볕 양이 늘어나서 그런 거래요.


글: 라어진. 사진: 나상미

평일 낮, 오후 3시

 

안녕하세요. 상미작가님.

안녕하세요. 새내기 이주민 나상미라고 합니다. 밴드 음악을 유별나게 좋아해 홍대의 라이브클럽에서 청춘을 보냈고요. 하고 싶은 거 놀고 싶은 거 다 해보고 미련 없이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이곳에선 사진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여행하며 사진을 찍으신다고요. 여행지에선 주로 어떤 것을 담으시나요.


여행을 하면서 찍는다고 하면 조금 거창한 느낌이 없잖아 있는데요(웃음). 여행지에 머무르면서 그곳의 일상을 담는 걸 좋아하고 있습니다. 숙소는 가급적이면 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을 이용하는 편이고요. 일정도 여러 군데를 옮겨 다니기보다는 한 장소에서 오랜 시간 체류하는 걸 선호해요. 그래야 돌아와서도 여행할 때의 설렘이 일상으로 잘 녹아드는 느낌이 들어서예요. 떠나기 전과 돌아와서 보는 일상의 시선은 확실히 다르거든요. 그런 느낌이 저의 사진에 은근하게 묻어 나오길 바라요.

 

유독 애착을 두시는 사진이 있다면요.

벌써 10년 정도 된 거 같은데요. 일하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당한 적이 있어요(웃음). 그때 사장님께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퇴직금 겸 위로금을 조금 챙겨주셨거든요. 그 돈으로 한 달간 일본 여행을 갔죠. 맞물린 시기가 참 좋았던 게, 일본에 살고 있던 이모가 마침 그 시기에 집을 비워둔 상태여서 그 집에서 한 달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지낼 수 있었어요. 도쿄가 아닌 사이타마라는 외각 지역이었고, 역에서도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야만 하는 그런, 진짜 사람 사는 동네였죠. 그전에도 일본은 몇 번 들른 적이 있던 지라 여행마저도 바쁜 그런 여행은 하지 않아도 되었죠. 그렇게 그곳의 주민이 되어 지내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러다가 필요한 게 생겨 긴자로 쇼핑을 나갔고, 나간 김에 이리저리 방랑하다 오래된 맥줏집엘 들어가게 되었어요. 별 특별할 것 없는 전개죠? (웃음) 근데 지금이야 우리나라에도 하우스 맥주를 곳곳에서 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꽤 생소한 일인지라 신기하게 여기며 들어가게 된 거예요. 그때가 아마 오후 3시였나. 암튼 그 어귀였어요. 평일이었고요. 맥주 한 잔과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시키고 기다리는데 묘하게 들뜨더라고요. 아마 오후 3시에도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게 당시의 저에겐 꽤 신선한 일이었나 봐요(웃음). ‘발상의 전환’이라는 걸 처음으로 몸소 느낀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의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다 똑같이 살 필요는 없겠구나, 그럼 남들의 기준은 무엇이고 내 기준은 또 무엇일까. 그런 고민이 쌓이고 쌓여 지금 제주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때 그 낡은 맥줏집에서 찍어두었던 사진이 여태 찍은 사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인 것 같습니다. 사진에 ‘평일 낮 오후 3시’라는 제목을 붙였고요. 아직도 사진을 보면 선명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더라면 기억하지 못했을 미세한 부분들이죠. 일상을 틈틈이 기록하는 건 되게 값진 일인 것 같아요.

나상미
필름카메라를 자주 사용하신다고 들었어요.

의뢰받은 스냅촬영을 할 때를 제외하곤 개인 작업은 전부 필름으로만 찍고 있어요.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카메라가 가진 매력은 확실히 달라요. 서로가 넘볼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특히 필름 카메라로만 낼 수 있는 묘한 색감을 좋아하는데요. 요즘 필름 시장이 많이 죽어서 필름을 구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질뿐더러, 가격은 오르고, 아끼는 필름들은 자꾸만 단종되고 있어요. 아쉽고 슬픈 일입니다.

 

영감을 받게 되는 사진작가나 시리즈가 있다면요.

작가나 시리즈보다는 주로 영상을 보며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영화나 타이틀 영상, 뮤직비디오 같은. 아, 잡지도요. 좀 색다른 시선의 사진들을 보면 자극이 돼요. 또 특별한 곳이 아니어도 영감은 얼마든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하다못해 집안에서도 빛의 흐름이나 모양을 보다 보면 무언가 떠오르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걸 보면요.

 

제주는 어때요. 사진 찍기에 훌륭한 장소죠(웃음)?

훌륭하죠. 서울에서만 살아온 서울 촌년이라 다른 곳에서 사는 건 처음이거든요. 저는 아직까지 길가에 버려져 있는 창고 건물만 봐도 너무 멋지다고 생각해요. 거기다가 매일같이 다른 날씨랑 풍경 때문에 정신 차릴 틈이 없습니다(웃음). 다가오는 2월 26일이 제주로 이주한 지 1년이 되는 날이에요. 역마살이 기본으로 있어서 앞으로의 일은 장담할 수 없지만, 아직은 제주에서 뿌리내리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제주를 담는 데 있어서 1년이란 시간은 부족한 시간이라는 거예요.

나상미

 


702snap instagram.com/702snap,

www.702snap.com


 

김현청 brian@hyuncheong.kim

–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이 사이트에 게시된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게시된 콘텐츠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하시려면 반드시 출처를 밝히고,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할 경우 저작권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Next Project

Back To Top
Theme M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