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탄생

바벨탑, 신들의 언어, 신성 문자

인류의 역사는 곧 언어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어는 단순히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공동체를 만들고 문명을 세우며, 신화와 종교, 예술과 과학을 꽃피운 힘의 원천이었다. 고대인들은 언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왜 서로 다른 말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말과 글이 어떻게 신성한 힘을 지니게 되었는지에 대해 깊은 궁금증을 품었다. 이 궁금증은 곧 신화가 되어, 언어의 기원과 그 신비로움을 노래하는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언어는 인간이 신과 소통하고,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며, 세상의 비밀을 해석하는 열쇠로 여겨졌다. 고대 사회에서 언어는 신의 선물로 간주되었고, 신화 속 신들은 인간에게 언어를 가르치거나, 언어를 통해 세상을 창조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집트의 토트, 바빌로니아의 나부, 인도의 사라스바티와 같은 신들은 언어와 문자, 지식의 신으로 숭배받았다. 언어는 곧 신성한 힘, 질서, 그리고 문명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언어는 언제나 하나였던 것은 아니다. 신화는 인간이 신의 질서에 도전하거나, 금기를 어겼을 때 언어가 혼란에 빠지고, 서로 다른 말을 쓰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바벨탑 이야기다. 인간이 하나의 언어로 힘을 합쳐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 하자, 신은 그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고, 온 세상으로 흩어지게 한다. 이 이야기는 언어의 분열이 인간의 오만과 신의 질서 회복에서 비롯되었음을 상징한다.


또한, 신화 속에는 신들만이 사용하는 신성한 언어가 존재한다. 이 언어는 인간의 언어와는 달리, 세계의 질서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힘을 지닌다. 고대 인도에서는 산스크리트어가 신들의 언어로 여겨졌고, 이집트에서는 신성한 상형문자가 신의 뜻을 기록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문자 역시 단순한 기록 수단이 아니라, 신과 인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신비로운 매개체로 여겨졌다.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 수메르의 쐐기문자, 중국의 한자 등은 모두 신성한 기원을 가진 문자로, 신화와 종교, 왕권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언어의 탄생과 그 신비로움에 대한 신화는,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던 가장 오래된 상상력의 기록이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인간의 정체성과 문명의 뿌리, 그리고 신과 세계를 잇는 다리로서 오늘날까지도 그 신비와 힘을 간직하고 있다.

 

하늘에 닿으려 한 인간과, 흩어진 말들

태초에 사람들은 같은 말을 썼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듣고, 같은 꿈을 꾸었으며, 같은 목소리로 노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은 결심했다.
“우리의 힘을 세상에 증명하자. 하늘에 닿는 탑을 세우자.”

거대한 벽돌이 하늘을 향해 쌓아올려졌다.
아침이면 먼지가 도시 위를 감싸고, 저녁이면 탑의 그림자가 강물 위를 길게 드리웠다.
사람들은 땀과 언어를 섞어가며 탑을 올렸다.
그 탑은 곧 신들의 영역에 닿을 듯 높아졌다.

그러나 하늘의 신은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하나의 말로 하나의 힘을 가졌다. 하지만 너희의 마음은 교만해졌다.”
그는 인간의 언어를 흩뜨려 놓았다.
어제까지 친구였던 이가 오늘은 낯선 말을 했다.
손짓과 표정은 남았으나, 의미는 사라졌다.

탑은 멈추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고, 각기 다른 땅으로 흩어졌다.
그 탑의 이름은 바벨이라 불렸다.
‘혼란’이라는 뜻이었다.


 

신들의 언어 ―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말

그러나 바벨탑의 이야기는 끝이 아니었다.
세상의 다른 곳에서는, 신들만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 언어는 세상의 질서를 움직이는 비밀의 힘이었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신들이 인간보다 더 높은, 더 완전한 언어를 쓴다고 여겼다.
그 언어로 쓰인 주문은 운명을 바꾸고, 세상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인도에서는 산스크리트어가 신들의 말이었다.
베다 경전과 제의는 반드시 이 언어로 낭송되었다.
그 발음 하나하나는 우주의 리듬과 맞닿아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 라틴어는 교회의 언어였다.
사제와 수도사들은 그 언어로 기도했고, 신과 인간을 잇는 의식을 집행했다.
평민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울림만으로도 신성함을 느꼈다.

신들의 언어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세계와 운명을 짓는 도구였다.


 

신성 문자 ― 보이는 말, 보이지 않는 뜻

말은 공기 속에서 사라지지만,
문자는 그것을 붙잡아 영원히 남긴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문자를 신들의 선물이라 믿었다.

수메르의 쐐기문자는 최초의 문자 중 하나였다.
왕과 사제는 그것을 신전의 기록과 의식에 사용했다.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는 말 그대로 ‘신성한 새김’이었다.
신전의 벽과 파피루스에 새겨진 글자는, 신들의 목소리를 눈앞에 펼쳐놓은 듯 보였다.

중국의 한자는 하늘과 땅, 물과 불, 산과 달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표기법이 아니라, 자연의 원리를 담은 철학이었다.

문자는 기록이자 기도였고,
기록이자 약속이었다.
신성 문자를 읽고 쓰는 일은 곧 신의 뜻을 해석하는 일이었다.


 

언어 신화가 전하는 것

바벨탑은 인간의 교만과 분열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다양성의 시작을 뜻한다.
신들의 언어는 신과 인간의 거리와,
그 거리 너머의 신비를 일깨운다.
신성 문자는 그 신비를 인간의 손에 쥐게 한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세우고, 문명을 만들고,
세상을 해석하는 틀이다.
언어를 잃으면 기억이 사라지고,
언어를 지키면 역사가 살아남는다.


 

오늘의 언어, 그리고 우리

오늘날 우리는 수천 가지 언어로 말한다.
그중 많은 언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고,
그 언어와 함께 문화와 세계관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바벨탑 이후의 인류는
언어의 차이가 벽이 아니라 다리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번역, 교류, 언어 보존 운동은
다시 ‘하나의 말’을 꿈꾸게 한다.

언어 신화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네가 쓰는 말이 곧 네가 사는 세계다.”
말은 우리를 만들고, 우리는 말을 만든다.
그 오래된 약속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김현청 | Brian KIM, Hyuncheong
블루에이지 회장 · 서울리더스클럽 회장 · 한국도서관산업협회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mail: brian@hyuncheong.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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