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만나는 세계의 맛 3

후거키친

우리는 늘 어딘가를 갈망한다. 뚜벅뚜벅 걸어서, 기차를 타고, 혹은 비행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 하지만 여행이란 물리적 거리나 공간의 크기와는 무관할지도 모른다. 제주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타국의 맛을 느끼고 그곳의 공기를 상상할 수 있으니.

 

한 접시의 요리에는 많은 것이 담긴다. 각기 다른 기후에서 자라난 곡물과 채소와 과일들을 비롯해,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난 동물들, 생선들까지. 또한 맛을 가미하는 갖가지 향신료와 설탕, 소금, 간장 등의 양념들. 거기에 다양한 조리법과 저장, 숙성 방법까지 더해지면 다양한 나라, 다양한 문화만큼이나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식이 탄생한다. 세계의 요리들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 맛이라는 것은 하나의 우주 아닐까.
문득 엄마밥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여행지에서 맛보았던 음식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방콕 카오산로드에서 먹었던 짭조름하고 달달한 팟타이와 바삭바삭한 스프링롤, 이스탄불 보스포르스해협을 바라보며 먹던 담백하고 신선한 연어구이와 뜨겁고 달달한 차이 한잔, 교토의 작은 밥집에서 먹던 할머니의 오므라이스, 히말라야 산위에서 먹던 네팔정식 달밧 등…. 음식은 단지 배를 채울 뿐 아니라 그곳의 문화와 자연, 음식을 먹던 순간의 추억까지 담는다.

 

제주바다 그리고 덴마크의 맛
덴마크가정식당 후거키친

나란히 이어진 돌담을 따라 걷다보면 단정한 흰색 건물의 후거키친이 있다.
커다란 창문 한가득 바다의 풍경이 담겨 있고 어디서나 자연이 가득하다.
마당에 놓인 캠핑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며 덴마크요리를 맛본다.

 

자연에 깃든 덴마크식당

캠핑을 좋아하던 젊은 부부는 조용하고 자연이 좋아 제주에 터를 잡았다. 한창 북유럽 인테리어가 유행하던 당시에 그들은 북유럽의 느낌을 담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그것은 레스토랑이라는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회색 콘크리트 노출 벽과 진한 나무색이 살아있는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가구들은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이다.
후거는 자연에 깃들어 있다. 창밖으로는 검은 돌담과 널어놓은 빨래들이 보이고, 마당에는 노란 수박 밭과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마당 한쪽에 있는 작은 텃밭에는 다양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타임, 바질, 로즈마리, 애플민트, 상추, 레디쉬, 대파, 쪽파, 그리고 옆집할머니가 주신 이름 모를 꽃까지. 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맛에 대한 감각과 상상이 만든 요리들

덴마크는 여러모로 제주와 비슷하다. 낙농업이 발달했고, 생선요리가 많고, 밭이 많다. 또한 감자가 많아 감자요리가 많고, 제철 채소도 많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제주와 덴마크요리는 잘 어울린다. 주인장 부부는 덴마크에 가본 적도, 덴마크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었지만 구글에 있는 덴마크요리 레시피를 번역하고 연구해 후거만의 메뉴를 완성시켰다.
대표메뉴인 포테이토연어케익은 구운 연어 위에 으깬 감자를 발라 두 번 구운 덴마크 로컬푸드이다. 그들은 오직 맛에 대한 감각과 상상력으로 이 요리를 완성했다. “포테이토연어케익은 먹어 본 적 없어요. 누군가가 덴마크 여행을 가서 바닷가 마을에 아주 허름한 펍에 다녀온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 사람의 글과 사진을 봤어요. ‘연어에 감자가 있었는데 배가 찢어질 것 같았다.’라는 표현 밖에 없었어요. 근데 알 것 같은 거예요. 그게 어떤 맛인지. 그래서 한번 해보게 된 거예요.”
데니쉬미트볼은 튀긴 미트볼과 발시믹에 졸인 양파와 양배추 절임이 곁들여 나오는 덴마크 전통음식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링고베리, 블루베리 등 베리류를 많이 먹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링고베리를 구하기 어려워 크랜베리와 레드와인을 믹스해서 소스를 만들었다. 달달한 소스가 고기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고 찾는 메뉴 중 하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아

‘후거(Hygge)’는 덴마크 특유의 휴식문화를 일컫는 말이다. 그 이름처럼 후거키친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안락하고 아늑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입맛이 없는 사람에게는 입맛을 돋우어줬으면 좋겠고 바빴던 사람에게는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고요. 외로웠던 사람들한테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런 쉴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어요. 처음부터.”
후거키친에 간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바쁜 마음과 걱정일랑 잠시 두고, 그저 바다를 바라보고 함께 하는 이의 눈을 마주하면 어떨까. 덴마크의 맛을 느끼며.

 

 


 

김현청 brian@hyuncheong.kim

–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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