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죄와 추방

에덴동산, 판도라,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인류의 신화와 전설 속에는 반복되는 하나의 서사가 있다.
금기와 그것의 파괴,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추방과 고통의 이야기.
이 서사는 단지 종교적 신념이나 문화적 상징에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경계를 세우고, 왜 그 경계를 넘고야 마는가. 그리고 왜 그 넘음은 언제나 대가를 수반하는가.

모든 신화는 혼돈 속에서 질서가 세워지는 과정으로 시작되지만, 그 질서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반드시 어느 순간, 누군가가 그 질서를 흔든다. 그 행위는 흔히 ‘첫 번째 죄’로 상징되며, 그 결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이때의 죄란 윤리적 잘못이 아니라, 금기된 지식, 행동, 장소, 대상을 침범함으로써 기존 세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 균열은 곧 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지며, 인류가 마주하는 현실―죽음, 노동, 고통, 이별, 불안정성―이 그때부터 시작된다.

 

에덴동산의 이야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 이 행위는 단순한 명령 불복종이 아니다. 그것은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넘는 행위, 즉 자신이 신의 판단 능력과 같은 위치에 서고자 하는 욕망의 실현이다. 그 순간 낙원은 폐쇄되고, 인간은 노동과 출산, 죽음을 짊어진 채 세상으로 추방된다.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는 ‘열어서는 안 되는 항아리’를 열고, 그 안에 갇혀 있던 모든 재앙이 세상에 퍼져 나간다. 그녀의 행위는 호기심의 결과였고, 그 대가는 문명의 탄생과 함께 온 고통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항아리 바닥에 남겨진 마지막 한 가지가 ‘희망’이라는 점이다. 금기를 깬 이후에도 인간은 절망 속에서 끝내 미래를 상상할 힘을 부여받는다.

일본 신화 속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죽음이라는 경계를 넘는다. 이자나기는 죽은 이자나미를 다시 보려는 욕망에 이끌려 황천의 세계로 내려가지만, 그가 본 것은 더 이상 아름다운 아내가 아닌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였다. 그 경계 침범 이후, 둘은 영원히 갈라지며, 죽음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현실로 인간 세계에 남는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서로 다른 문화권에 속하지만, 동일한 구조를 따른다. 금기의 설정 → 파괴 → 추방 → 새로운 세계 질서의 탄생. 이 패턴은 단지 신화의 구조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 심리와 사회적 경험을 반영하는 근본적 서사이다.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에덴에서, 판도라의 항아리 앞에서, 황천의 문턱에서 삶의 경계를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 경계를 넘을 것인지, 머무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에덴동산: 선악과와 인류의 추방

성서의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도 그 열매를 먹는다. 이로써 두 사람은 자신이 벌거벗었음을 깨닫고,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은 이들의 불순종을 알게 되고, 뱀에게는 땅을 기어다니는 저주를, 하와에게는 출산의 고통과 남편에 대한 복종을, 아담에게는 평생 노동과 죽음을 선고한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생명나무로 가는 길은 천사와 불칼로 봉쇄된다. 이 사건은 인류가 고통과 죽음, 죄의 굴레에 들어가게 된 ‘원죄’의 기원으로 해석된다.

판도라: 호기심과 재앙, 그리고 희망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는 신들이 만든 최초의 여인이다. 제우스는 인간이 프로메테우스의 도움으로 불을 얻은 것에 분노하여, 판도라에게 절대 열지 말라는 상자를 준다.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지만,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연다. 그 순간 상자 안에 있던 모든 질병, 슬픔, 가난, 전쟁, 증오 등 온갖 불행이 세상에 퍼진다. 판도라는 급히 상자를 닫지만, 그 안에는 ‘희망’만이 남게 된다. 이 신화는 인간의 불행과 고통의 기원을 설명하는 동시에,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만은 남아 있음을 상징한다. ‘판도라의 상자’는 오늘날에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시작, 혹은 마지막 남은 희망의 상징으로 쓰인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죽음의 경계와 영원한 이별

일본 신화에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천지창조의 신으로, 일본 열도와 수많은 신들을 낳는다. 그러나 이자나미는 불의 신 카구츠치를 낳다 죽고, 죽음의 세계(요미)로 간다. 이자나기는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요미로 내려가지만, 약속을 어기고 이자나미의 죽음의 모습을 보고 만다. 이자나미는 분노와 수치심에 이자나기를 저주하며, 그를 죽음의 세계에서 쫓아낸다. 이자나기는 가까스로 도망쳐 요미의 입구를 바위로 막고, 이자나미와 영원히 이별한다. 이 사건은 죽음과 삶의 경계, 부정(不浄)과 정화(淨化)의 개념, 그리고 인간 세계에 죽음과 이별, 저주가 들어오게 된 기원을 설명한다. 이후 이자나기는 정화의 의식을 통해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고, 이 과정에서 일본 신화의 주요 신들이 태어난다.

신화적 의미와 현대적 해석

이 세 신화는 모두 ‘금기’의 파괴와 그에 따른 추방, 그리고 세상에 들어온 고통과 죽음, 불행의 기원을 다룬다. 에덴동산에서는 신의 명령을 어긴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 판도라 신화에서는 호기심과 불순종,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신화에서는 사랑과 이별, 죽음의 경계가 중심 모티프다. 이 신화들은 인간이 왜 고통받는지, 왜 죽음과 불행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답하며, 동시에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과 정화,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남긴다.

 

신화

금기의 내용

죄의 결과

상징적 의미

에덴동산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

추방, 고통, 죽음

원죄,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

판도라

상자를 열지 말라는 경고

불행, 재앙, 희망의 잔존

악의 기원, 희망의 상징

이자나기·이자나미

죽음의 세계를 보지 말라는 약속

저주, 이별, 죽음의 경계

죽음과 삶의 분리, 정화와 재탄생

 

이처럼 ‘첫 번째 죄와 추방’의 신화는 인간의 본질적 한계와 가능성,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이어지는 희망과 재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금기를 넘는 순간, 세상은 변한다. 그러나 그 끝에는 언제나 새로운 시작과 희망이 있다”고 속삭이고 있다.

 

 
 

김현청 | Brian KIM, Hyuncheong
블루에이지 회장 · 서울리더스클럽 회장 · 한국도서관산업협회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mail: brian@hyuncheong.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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