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은 한 권의 오래된 책이었다.
그 책의 표지에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박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제목은 태양과 달이었다.
태양은 낮의 장(章)을, 달은 밤의 장을 차지하며
인류의 상상력을 끝없이 부추겼다.
고대인들은 이 두 존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수천 년 동안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 이야기들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삶과 죽음, 희망과 두려움의 은유였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에게 태양은 하늘의 배였다.
그 배에는 태양신 라가 타고 있었다.
라가 새벽마다 동쪽 강변에서 배를 띄우면,
세상은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그는 저승의 강으로 내려가 아포피스라는 거대한 뱀과 싸웠다.
만약 그 싸움에서 패한다면…
다시는 아침이 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은 매일 아침, 태양이 떠오를 때마다 안도했다.
‘오늘도 라가 승리했구나’ 하고.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은 헬리오스였다.
그는 불타는 말 네 마리가 끄는 황금 마차를 타고 하늘을 질주했다.
만약 말들이 날뛰어 하늘 길을 벗어나면
세상은 불타거나 얼어붙는다고 믿었다.
태양은 그만큼 힘 있고, 또 위험한 존재였다.
일본의 태양여신 아마테라스는 빛과 질서를 지키는 수호자였다.
그러나 어느 날, 세상에 실망한 그녀는 하늘의 동굴로 숨어버렸다.
순식간에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사람들은 굶주리고, 짐승들은 길을 잃었다.
신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고, 웃음과 춤으로 아마테라스를 불러냈을 때
비로소 빛이 돌아왔다.
태양이 없다는 건 단지 어두운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가 무너지는 일이었다.
달은 태양과 달랐다.
태양이 매일 똑같은 얼굴로 떠오르는 반면,
달은 매일 조금씩 모습을 바꿨다.
가느다란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다시 그믐으로…
그래서 사람들은 달을 변화의 여신으로 보았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달의 신 ‘신(Sin)’ 이 밤하늘의 왕좌에 앉아
시간과 농경을 다스린다고 믿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은빛 날개를 단 셀레네가
하얀 말이 끄는 수레를 몰고 밤하늘을 달렸다.
그녀는 인간 남자 엔디미온을 사랑해,
그를 영원히 잠든 모습으로 달빛 속에 간직했다고 전해졌다.
동양에서는 달에 관한 이야기가 한층 서정적이었다.
중국의 항아는 불사의 약을 훔쳐먹고 달로 도망쳤다.
그곳에서 외롭게 살았지만,
곁에는 절구질을 하는 흰 토끼가 있었다.
한국의 달토끼 전설도 여기서 이어진다.
아이들은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저기 토끼가 방아 찧고 있네’ 하고 속삭였다.
달은 이렇게 그리움, 외로움, 그리고 변화를 상징하는 거울이었다.
하지만 태양과 달이 서로 만날 때,
그것은 평범한 하늘이 아니었다.
일식과 월식은 고대인들에게 불길하고도 신비한 사건이었다.
중국에서는 거대한 용이나 괴물이 태양과 달을 삼킨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북을 치고, 냄비를 두드리며 괴물을 쫓았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두 마리의 늑대, 스콜과 하티가
태양과 달을 끊임없이 추격하다가
마침내 삼킬 때 일식과 월식이 일어난다고 여겼다.
이집트의 라 역시 매일 밤 아포피스와 싸우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만 새벽의 빛을 세상에 가져올 수 있었다.
태양은 확고함과 권위, 생명의 불씨였다.
달은 변화와 주기, 꿈과 비밀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이 두 존재의 춤은 늘 빛과 어둠, 남성과 여성, 질서와 혼돈이라는
대립과 조화의 은유가 되었다.
고대인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안에서 자기 삶의 리듬을 발견했다.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시기,
아이를 잉태하고 기르는 시간,
여행을 시작할 길일(吉日)까지…
모두 태양과 달의 발자취 속에서 찾아냈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으로 태양의 질량과 달의 궤도를 계산한다.
하지만 해가 뜰 때 가슴이 벅차오르거나,
보름달을 보며 오래된 사랑을 떠올리는 건 여전히 인간의 일이다.
태양과 달은 더 이상 미지의 신이 아니지만,
그들이 주는 감정과 상징은 아직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신화처럼 살아 있다.
하늘은 여전히 말없이 우리를 부른다.
“올려다보라.
거기에는 너의 이야기가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