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지르잡기 03]
1990년대 말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가 최근에는 K-POP으로 기세를 더하고 있다. 한때 드라마가 이끈 아줌마 한류의 위기론이 심심치 않게 이야기 되었지만 이제는 K-POP을 통해 연령과 국경을 불문한 한류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바로 신한류다.이제 한국은 세계 문화를 동경하고 모방하던 변두리 국가에서 세계인이 열망하고 따라하는 문화의 중심축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한류의 위력을 잘 설명한 기사가 2011년 2월 국내 한 언론에 소개됐다. 이 기사는 영국의 세계적인 미디어 거물이자 비즈니스와 국제정치, 디자인을 다루는 ‘모노클(Monocle)’의 발행인 겸 편집장인 타일러 브뤨레의 방송출연 기사였다. 기사의 제목은 “K-POP, 韓 최고 수출상품, 소녀시대 극찬.” 종이매체의 위기에도 연 35%의 성장을 이룬 영국의 잡지 ‘모노클’ 대표 블뤨레가 경제 방송인 ‘블룸버그 TV’에 출연해“K-POP은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무기”라고 평가하고 “삼성·현대·LG는 강력한 한국 최대의 수출 브랜드지만 지금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어필하는 한국의 파워브랜드는 보아, 소녀시대, 에픽하이, 슈퍼주니어 등의 K-POP 가수들”이라고 평했다는 내용이었다.<머니투데이 박영웅 기자>
한류의 영향력은 세계적인 시사주간 타임지에서도 심심치 않게 다뤄진다. 한일월드컵이 개최된 2002년 20건에 불과하던 타임지의 한류문화관련 기사가 2006년에는 80건에 이르기 시작하며 매년 수십 건의 한류관련 기사를 쏟아 놓고 있다.한국의 정치관련 기사가 대부분이었던 그간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타임지의 한국관련 키워드 가운데 가장 인연이 깊은 연예인은 가수 겸 연기자로 활동 중인 비다. 비는 2006년에 이어 2011년까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비는 사실 2006년 이후 2007년에도 온라인투표에서는 1위를 해 -그것이 인기투표라는 지적이 있음에도- 국경을 불문하고 가수와 연기자로서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2010년 8월에는 ‘빅뱅’의 메인보컬 태양의 첫번째 정규앨범 ‘솔라’가 아이튠즈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발매가 되었으며, 이어 미국 알앤비차트에서 2위, 캐나다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와 같은 성공요인으로 K-POP 스타들이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직접 트위터를 하고, 유투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아시아를 넘어 세계 시장까지 직접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음악차트 집계업체인 미국 빌보드도 한류의 세계적인 위세에 문을 열었다. 2011년 8월, 드디어 ‘K-POP 차트’를 신설한 것이다. 8월 18일자로 발표된 빌보드 K-POP 차트에는 씨스타의 ‘소 쿨’이 1위, 리쌍의 ‘TV를 껐네’가 2위를 차지했다. K-POP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사실 K-POP 차트가 신설되기 전 이미 빌보드에서 K-POP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 사건이 계속됐다. 원더걸스가 국내 가수 최초로 빌보드 싱글차트인 ‘핫100’에 이름을 올렸다. 빌보드에 한류의 서막을 알린 것이다. 원더걸스의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 진입은 한국인이 작사 작곡한 곡으로는 빌보드의 115년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더불어 원더걸스 빌보드 차트 진입은 아시아에서도 매우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1963년 큐사카모도, 1979년 핑크 레이디, 1980년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이후 아시아 가수로는 30여년 만에 처음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보아는 빌보드 장르별 차트인 ‘핫 댄스 클럽 플레이 차트’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었고, 김범수, 밍크 등 몇몇 한국 출신 가수들도 빌보드의 장르별 차트에 진입했다.
그러나 빌보드에서 한국인 가수로서 JYJ만큼 다양한 무용담을 가진 K-POP 가수는 없는 듯하다. JYJ는 그간 빌보드 지 메인을 세 번이나 장식함은 물론 세계적인 유명아티스트를 뒤로하고 2010 빌보드 독자가 뽑은 베스트 앨범 5위를 차지했다. 또한 세계적인 팝스타들에게만 허락된다는 빌보드 스튜디오에서 한국인 최초로 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이는 아시아에서도 지난 2007년 SBS의 스타킹에도 출연에 익숙해진 필리핀 소녀가수 샤리스 펨핀코(Charice Pempengco)와 JYJ가 유일하다. 국내에서는 가수로서의 발송활동이 철저히 차단된 상황에서 JYJ의 일거수일투족이 빌보드지를 비롯한 해외의 각종 K-POP사이트에서는 더욱 뜨겁게 소개 되고 있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말 그대로 한국의 스타가 아닌 세계 속의 스타로서 JYJ의 한류 파워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실체다. 위와 같은 한류의 파워는 그 사례를 일일이 다 소개할 수도 없다. 연일 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SM타운의 파리공연과 일본한류 공연은 그 폭발력을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현실이었다.
이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대한민국의 위상은 어쩌면 한류라는 대중문화를 통해 그 정점에 다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통한 역동적인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었고 IT, 스포츠 등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일궈냈다. 한국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를 두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 한류가 한국인들에게 가슴시리도록 의미 있는 사연은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 처절한 가난과 무지의 한을 딛고 일어나 풍요와 부의 상징으로만 알았던 문화마저 세계문화의 주역으로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전쟁과 가난의 실체였던 한국인들에게 한국 드라마와 K-POP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과 한국의 몸짓과 노래를 따라하는 유투브(www.youtube.com)의 이방인을 보는 것은 신기함과 낯설음을 넘어 어느덧 익숙함이 되어 버렸다. 말 그대로 기적적인 반전이다. 라디오서 흘러나오는 팝송과 재즈를 따라 부르고 흑백TV속의 앨비스 프래슬리와 마이클 젝슨의 춤에 열광하던 한국인들로서는 한국의 IT기술과 첨단 미디어 기술로 뻗어나가는 한류에 충분히 자긍심을 가지고 어깨한번 으쓱거려도 좋을 일이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 속에서 어떤 사람은 한류의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염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평범한 시민들에게 한류와 관련된 문화적 민족주의는 자부심과 자긍심 그이하도 이상의 의미도 아니다. 더불어 일부에서 염려하는 문화민족주의나 국수주의는 한류의 주동력을 가진 주체들과 미디어가 방향성만 잃지 않는다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한류를 세계 최고라고 우기며 타문화를 배척하며 적대시하는 행태나 한류의 해외시장 석권을 문화의 정복이나 지배논리로 해석하는 것은 보편적인 대중들 사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해외에서의 정책적, 의도적 반한 감정을 조장하는 행태가 걱정해야할 일이다.
지금 여기서 한류와 관련된 가장 염려되는 아젠다는 한류를 담아내는 윤리와 그것을 경영하는 사람의 문제다. 중화학공업과 건설, 자동차, 전자, 조선, 반도체 등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고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은 이제 문화가 단순한 흥미로움을 넘어 그 무엇을 뛰어넘는 경제적 파괴력과 더불어 국가브랜드와 연관된 엄청난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물건임을 알게 되었다. 세계의 시민들이 한국산 제품에 담긴 한국산 문화상품-한국 드라마와 K-POP-을 보고 즐기며 열광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무작정 좋아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한다면 찬물을 끼얹는 짓일까? 최근 한류의 주체와 실상이 문화인(文化人)이 아니라 문하인(文下人)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한국 드라마와 K-POP의 이미지에 담겨진 한국인이 아니라 실제의 한국인은 어떤지 고민스럽다는 말이다. 한류를 상업화하고 이끄는 세력들이 문화(文華)스럽지 못한 것이 개탄스럽다는 말이다. 즉 한류가 공유하고 담고 영유해야 할 인간됨이 한류에서 빠져 있지 않은가 하는 고민이다.
동남아에서 한국인의 추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서방인들에게는 역동적인 경제성장과 기질 때문에 ‘다이나믹 코리안’이라고 불리는 한국인이 동남아아시아에서는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별명까지 얻었겠는가? 이는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제왕처럼 군림하려는 한국인의 양면성 때문에 생긴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류에 열광하는 세계 여러 곳에서 실제로 접하게 될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어글리 코리안을 묘사하는 또 다른 말이 있다. 바로 ‘바나나’다. 일부 외국 언론들은 한국인들을 ‘바나나’라고 비아냥거린다. 이는 황인종이면서 백인처럼 살고 있는 한국인을 일컬어 붙인 별명이다. 마치 백인을 미화하고 그들과 우리를 동일시하지만 다른 유색인들에 대해서는 천하게 느끼는 한국인들이 밖은 노란데 안은 흰 모습을 한 바나나와 같다는 야료인 것이다. 어느 특정한 지방출신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나 괄시, 특정국가에 대한 차별대우는 한류에 있어서 치명적인 독소다.
한류를 통해 만들어진 한국인의 허상 또한 수심에 잠기게 한다. 상당수의 한류 팬들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의 남자들은 대부분 사려 깊고 매너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주택들은 목가적이거나 세련되고 도시적이라고 여긴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택은 잔디가 깔린 정원을 지나 들어가면 탁 트인 거실과 복 이층구조가 대부분이다.한류를 접한 외국인에게 한국인의 일상사에 대한 허상이 만들어 진 것이다. 사실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남자 주인공들은 권위주의적이고 퉁명스러운 보통의 한국남성들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일부에서지만 가정과 사업체에서 이주민 여성이나 이주 노동자들에게 몰상식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소식들이 빈번이 알려지고 있다. 해외여행에서 보여주는 여행자들의 추태는 이미 도를 넘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한국의 전반적인 상황은 아닐지라도 반한감정을 갖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11년 새해벽두, 일본에서는 소녀시대와 카라의 성상납 만화 ‘K-POP 붐 날조설’이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일본의 유력 엔터테인먼트사를 앞세워 한류를 조장한다는 내용이었고 일본 신한류의 주역인 소녀시대와 카라가 성상납 연예인으로 묘사됐다. 대만의 한 방송에서도 소녀시대의 사진을 비춰주며 한국에서 연예인을 하기 위해서는 성상납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후 소녀시대의 사진을 사용한 것에 대만 방송의 공식 사과는 있었으나, 오히려 한국 연예계에서 성상납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정타는 2011년 1월 9일 뉴욕 타임즈의 기사였다. 타임즈는 2009년 3월에 고인이된 장자연 씨에 대해 자세히 전하며 한국 연예계에 만연한 착취와 성상납 현실을 다루었다. 한류열풍 이면에 기획사와 연예인 간의 노예계약이 존재하며 특히 여자 연예인들은 기획사 측에 의해 감독, 유력 언론인, CEO 등에게 성상납을 강요당한다는 내용이었다.
뉴욕 타임즈는 이를 입증하는 자료로 국가인권위원회가 2010년 4월 국내 여성 연기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111명의 유명 여자 연예인과 240명의 신인 여배우 50% 이상이 술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있으며 30%는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과 성희롱이 있다는 내용이다. 참으로 가관이 것은 응답자의 20%가 사회 유력인사나 방송관계자와의 성관계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뉴욕 타임즈가 예로든 내용을 더 살펴보면 한국의 20개의 연예기획사가 연예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연예인이 소속사를 바꿀 자유를 불법적으로 제한한다는 것. 나아가 한국 연예계의 이러한 행태는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조정되고 통제를 받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한 실례로 2010년 7월 동방신기와 소속사인SM엔터테인먼트 간의 재판 내용을 인용했으며 미국 투어 중 원더걸스가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병원조차 제대로 갈 수 없었다고 폭로했던 전 영어교사의 주장을 다뤘다. 타임즈는 이어 권력과 인기 사이에서 피해를 당하는 한국 여자 연예인이 여전히 존재하며 장자연 사건은 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10만 명 가까운 어린이가 동원되는 북한의 아리랑 공연의 장엄함에 감탄하면서 누구도 그 문화를 칭송할 수 없는 것은 공연을 준비하기위해 행해지는 아동 학대와 더불어 굶주리는 주민은 아랑곳 하지 않고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집단적인 광기의 산물이며 권력의 유지와 사상의 선전, 돈벌이를 위해 수많은 북한주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한류는 한국대중문화의 세계화라는 단순한 자부심을 넘어 돈이 되고 장사가 되는 단계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변칙과 술수가 작용한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계인의 우상이 된 연예인들이 불합리한 대우와 소위 노예처럼 이용된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한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비판이 있어야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한류에 대한 해외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에 대해 어느 나라의 연예계에서나 존재하는 문제를 한국에서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 한다고 불쾌해 한다거나 한류를 견제하기 위해 지나치게 과정하고 폄훼한다는 식으로만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이제 맹목적인 애국주의는 도움이 안 된다. “6만4천 번의 반복은 진실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한류에 대한 정의와 진실은 단지 미디어와 일부 기득권층이 쏟아 놓는 칭송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어느덧 그것이 한류의 진실이 된듯하다.2011년 8월 한류의 정략가로 칭송받는 연예기획사의 대표가 광고에 등장했다. “국민의 내일에 투자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증권사 광고였다. 이 광고의 모델인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씨는 2003년 그가 대표로 있는 연예 기획사의 유상증가 과정에서 회사 자금 11억5000만원을 빼돌려 자사 주식을 구입하고 시세차익을 올린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더욱이 소속 연예인과의 계약문제로 논란의 한가운데 서있는 당사자다. 한류의 공(功)과 과(過)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한류의 대표주자가 말하는 내일에 대한 투자는 무엇인가? 때문에 “국민의 내일에 투자합니다”라는 이 광고는 한류의 오늘과 내일에 대한 투자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게 하는 상징적인 영상물이 되었다.
한류에 대한 맹목적인 칭송은 그것의 진의를 떠나 매우 위험하다. 이제는 한류를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류의 내일을 위한 투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바로 인간됨의 한류다. 문화에 사람이 빠지고 돈과 권력과 야망이 자리하고 있다면 한류의 내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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