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지르잡기 05]
2009년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이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의 실상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전체 연예인 응답자 183명 중 19.1%(35명)가 성상납, 34.4%(63명)가 접대강요, 42.6%(78명)가 금품요구, 9.8%(18명)가 폭언·폭행을 직접 겪었거나 동료의 피해 사례를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PD와 방송 종사자, 그리고 언론인들은 국민의 공공재를 다루는 일에 종사합니다. 이들에게는 보편적인 기준을 뛰어넘는 직업윤리와 추구하는 가치에 있어서의 정의로움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종교인과 더불어 가장 존경받지 못하는 직업군에 속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치인에게 위장전입은 필수고 탈세는 과도하고 바쁜 업무에서 비롯된 단순한 실수로 치부되듯이 성상납과 금품수수는 영세한 기획사와 일부 PD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며 관행이나 구조적인 문제라고 단정합니다. 연예인의 19%가 성상납에 자유롭지 못하고, 34%가 접대를 강요받으며, 42%가 금품을 요구 받았다는 사실을 관행이나 구조악의 문제로 결론내리는 것은 시정잡배의 윤리의식보다 저급한 하위수준의 의식을 반영한 것입니다.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한 지도층의 모습입니다.
앞서 언급한 장자연 사건은 우리 사회 엘리트들이 우월적인 지위를 얼마나 남용했는지를 잘 말해 줍니다. 여기에는 경제·사회적인 기득권 세력의 부도덕함과 정의롭지 못한 대한민국에 대한 혐오와 동시에 연예인으로서 인기와 명성을 동경하는 이중적인 심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론적으로 연예계를 동경하는 한 젊은 여성의 질고의 문제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사회도 공적 담론을 공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술수와 뒷담화가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형태의 거짓말도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한나라의 최고정책결정권자가 표를 의식해 공약집에도 없는 말을 했다는 식의 발언이나 정책 실무자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잘못된 정보를 반복해서 흘리는 양치기소년의 행태는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보도를 통제하고 돈 되고 인기를 얻는 사안에 편파적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의 행위는 그들의 구호인 정론직필은 고사하고 한국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사회악입니다. 안타깝게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계에서 만연한 이런 식의 행태는 오히려 이런 것을 감시해야할 언론계가 앞장서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좋아서 갔을 것 아니냐”는 식의 발언이나 “증거가 불충분해 협의가 없다”는 결론은 우월적 지위를 가진자들의 부도덕함과 정의롭지 못함을 대변하는 발언입니다.
공적이라는 말에는 의미심장하게도 걸맞지 않은 상반된 의미가 공존합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공적은 국가나 사회에 관계되는 또는 그런 것으로 공공의 의미입니다. 또 다른 공적(功績)은 공로(功勞)의 실적(實績)을 일컫는 말입니다. 세 번째로 공적(公賊)은 공금(公金 )이나 공물(公物)을 훔친 도둑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공적(公敵) 국가나 사회 또는 공중(公衆)의 적을 지칭합니다. 공적인 담론을 다루어야할 미디어 권력과 상당수의 언론인들은 여전히 지배계급과 정치경제사회적인 절대적 우위를 지닌 자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기 위해 프로그램과 칼럼을 지배하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는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바로 시장의 요구, 공공의 이익, 경제성이라는 공적(功績)논리입니다. 나아가 공적인 문제를 걸핏하면 필연적인 구조악이나 개인의 우울증 또는 정서적인 문제로 몰아가며 언론을 호도하는 것은 공적(公賊)과 같은 짓입니다. 이처럼 공적인 담론을 자신의 공적(功績)을 위해 공적(公賊, 공중의 도둑)과 같은 짓을 일삼는 언론인들은 한국사회가 퇴출해야할 공중의 적,즉 공적(公敵)입니다.
과거 연예계 비리는 연예인의 야간업소와 관련된 폭력배와 관련된 것들이나 PD를 대상으로 한 금품상납 등이 주를 이루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며 새로운 현태의 비리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기업화된 연예기획사의 방송독점, 경영비리, 횡령, 증권과 관련된 기업형 비리입니다.
2002년 1월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의 음반 PR비 제보로 시작된 검찰의 연예계 비리 수사는 연예기획사로부터 주식이나 금품을 받은 지상파 방송의 PD와 스포츠신문 기자 등을 사법처리하고 4대 연예기획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전례 없는 강도로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이 결과 2003년 10월 ‘연예계 비리’와 관련해 검찰의 조사를 받아온 SM 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 이수만씨와 개그맨 서세원씨, GM기획 대주주 김광수씨가 구속되며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서울지검 강력부는 2003년 10월 8일 연예계 비리와 관련, SM엔터테인먼트 대주주인 이수만, 서세원프로덕션 운영자인 서세원, GM기획 대주주인 김광수 등을 배임증재 및 횡령 등 혐의로 구속수감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이수만은 1999년 8월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SM엔터테인먼트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회사 공금 11억5천만원을 빼내 증자 대금으로 입금했다가 인출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서세원은 서세원프로덕션을 운영하면서 영화 <조폭마누라> 및 소속 연예인들의 홍보를 위해 방송사 PD 등에게 홍보비 명목의 돈을 뿌리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작성해 3억7천만원의 조세를 포탈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또 ‘스타 제조기’로 불리던 GM기획 대주주 김광수는 1999년12월부터 2002년 7월까지 60여 차례에 걸쳐 회사공금 46억여원을 빼돌려 빌딩 및 주택구입 자금 등으로 쓴 혐의를 받았습니다. 이중 이수만은 구속적부심에서 보증금3천만원을 납입하는 조건으로 석방됐습니다. 재판부는 “이 씨가 코스닥 등록추진 과정에서 잠깐 회사돈을 뺐다가 다시 넣은 행위는 법적으로 횡령죄의 구성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사실이나 SM엔터테인먼트가 주식회사라곤 해도 사실상 이 씨의 개인회사처럼 운영됐고 회사에 끼친 손해가 없다는 점에서 구속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지요. 하지만 서세원에 대한 구속적부심 청구는 기각됐습니다. 재판부는“석방하면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서 씨의 청구는 기각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건을 다룬 기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겼습니다. “지난 90년, 95년 연예계 비리 사건에 관련됐던 혐의자들이 그랬듯 제자리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인가?”
정답은 “안 봐도 비디오” 아닙니까?
안 봐도 비디오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분노하던 대중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망각이라는 최면에 걸려버린다는 것입니다. 금품상납과 성상납 협의를 받은 PD도, 주가를 조작해 주식로비를 한 기획사 대표도, 불공정 노예계약의 원흉도,원조교재 범법자도 시간이 흐르며 잊힙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시 등장해 이전보다 더 큰 명예와 부를 부여잡습니다. 바로 비리와 범죄에 대한 대중의 망각 때문입니다. 경제논리 혹은 현실논리에 따른 관용과 이에 대해 무관심한 대중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각종 비리가 끊임없이 양산되고 이로 인해 억울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자살이나 폭력 등의 극단적 선택들은 반복되는 것입니다.
한국 연예계관련 비리 수사는 늘 치료 할 수 없음이라는 진단이 나옵니다. 진단서는 있는데 처방전은 없습니다. 이렇게 1990년, 1995년 2003년 2009년 그리고 2011년 연예계에 대한 수사가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내놓지 못했고 비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비리의 당사자들이 여전이 정·재계나 연예계에서 한자리씩 꿰차고 있고, 오히려 추앙받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연예계 비리는 늘 소수의 행태나 그럴 수 있는 관행쯤으로 치부됩니다. 그들에게 관행이라는 말은 상식이라는 말과 동일한 듯합니다. 관행은 암묵적이고 집단적인 합의라는 것이지요. 이는 바로 상식선과 연결된 것입니다. 그러나 상식도 상식 나름입니다. 비리의 당사자들이 최소한의 염치나 도덕성마저도 없어 보입니다. 비리의 당사자들은 걸리면 재수가 없었던 것이고 혹여 문제가 터지면 적절한 선에서 책임지는 듯 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사건을 무마하기 위한 언론플레이를 하며 마무리합니다. 즉 운이 없으면 나락 떨어지듯이 떨어지는 것이고 돈과 뒷배가 있으면 과거는 묻히고 건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연예계 관련 비리가 늘 용두사미로 끝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있는 자들에게는 관행이라는 상식선의 가치이고 없는 자에게는 없어서 겪는 서글픔인가요? 아니면 비리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서 손을 댔다가는 사망에 이를 수도 있던가. 손을 댈 대상은 너무 막강한 권력과 자본을 가지고 있어서 덤빌 엄두도 못 낸 것인가요? 아니면 비리 당사자들이 너무 완벽하게 뒤처리를 해 흔적을 남기기 않기 때문일까요?
들어보니 다른 사정도 있더군요. 연예계관련 비리는 제보나 첩보는 무성한데 혐의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연예계를 대상으로 수사가 있을 때마다 반기는 분위기 보다는 오히려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훨씬 큰 실정이라는 것이지요. 왜냐고요? 진실을 이실직고하는 당사자는 방송사로부터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해야 되며 연예계에서는 바로 왕따가 된답니다. 이 같은 불안은 과거 수사 때마다 되풀이되던 경험에 서 비롯된 것이랍니다.
실제로 검찰이 2003년 지명수배한 모 기획사 대주주 김모씨의 경우 가수 매니저로 왕성한 활동을 했으나 1995년 연예계비리 수사 때 수사관계자에게 업계 비리를 ‘이실직고’했다가 연예·방송계에서 ‘왕따’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씨는 연예계 주변을 맴돌다가 1998년 인기가수 조 모씨를 발굴, 어렵사리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검찰이 연예인이 방송출연 및 음반소개 등의 대가로 방송관계자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첩보를 입수, 해당자를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지만 역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제 원칙과 정의가 존중받고 인정받는 연예계가 되어야 합니다. 부조리에 저항하면 괘씸죄에 걸리고 진실을 말하면 왕따 당하는 세상에서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향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회적 부조리나 연예계와 관련된 비리가 터질 때마다. 정의와 원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담론이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담론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를 보여 왔습니다. 이제 정치·사회적으로는 성숙한 시민들이 소통하고 공동의 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연예계는 팬과 시청자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다행이 SNS를 통한 소통을 통해 활발하다고는 하지만 실천적인 면에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최근 주목할 만한 것은 동방신기 사태로 촉발된 팬들의 적극적인 행보입니다. 한국 팬덤 문화를 바꾸고 연예계의 부조리를 바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사건들입니다. JYJ 팬들이 법적인 투쟁과 광고, 성명발표 등 불공정한 관행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단순히 JYJ만을 위한 행동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는 모든 연예인들이 이 사태를 주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연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JYJ의 사태의 문제를 짚어보고 이와 관련된 팬덤 문화의 의미 있는 변화를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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