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 없는 질문과 고백, 무너지는 신뢰와 사랑

인간 감정의 지도를 그려보는 감성 미스터리 연극 <스피킹 인 텅스>

호주의 유명 극작가 앤드류 보벨(Andrew Bovell)의 대표작 감성 미스터리 연극 <스피킹 인 텅스(Speaking in Tongues)>가 5월부터 한국 초연 무대를 통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막을 올린다.

 

 

1996년 시드니에 위치한 SBW 스테이블스극장에서 초연한 후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작품은 이듬해 호주작가협회상 공연 부문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1년에는 작가가 직접 이 희곡을 시나리오로 각색해 영화로 제작했다. 그 작품이 그 유명한 <란타나(Lantana)>이다.

영화 <란타나>는 호주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개봉해 관객의 큰 사랑을 받았으며, 같은 해 호주영화협회상(현 호주영화텔레비전예술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남자주연상, 여자주연상, 남자조연상, 여자조연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2003년에는 런던비평가협회상에서 작가상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연극 <스피킹 인 텅스>는 2001년 미국 오프–브로드웨이 그래머시극장과 영국 웨스트엔드 햄스터드극장에서 초연한 후 지금까지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에서 계속 재공연하고 있을 만큼 영미권에서는 친숙한 작품이다. 특히 2009년 영국 웨스트엔드 듀크오브요크극장 공연에서는 드라마 <닥터 후>로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유명배우 존 심(John Simm)이 출연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어거스타 서플> <오스트레일리안> <커튼콜> 등 호주 주요 언론으로부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스피킹 인 텅스>는 완벽 그 자체다” “대단히 흥미로운 현대적 고전. 꼭 봐야만 하는 작품” “호주 한 세대에 걸쳐 탄생한 최고의 연극! 경탄할 만한 작품”이라는 극찬을 이끌어냈다. 영국 <파이낸션 타임즈>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거짓말 같은 사건들, 무지개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연극”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아직 아시아 국가에서는 공연사례가 없는 이 작품이 한국에서 초연된다는 소식에 일찌감치 언론과 공연마니아 사이에서는 기대감이 형성되었다. 특히 1년 만에 관객동원 10만 명 이상에 성공한 수현재컴퍼니의 차기작이라 흥행여부에 더욱 관심이 모아졌다.

작가 앤드류 보벨은 <스피킹 인 텅스>에 대해 “인간의 감정에 따른 행동양식의 옳고 그름에 관한 이야기이자, 낯선 사람과 깊은 유대를 형성하는 사이에 부서지고 마는 기존의 친밀한 사람 사이의 ‘계약’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의하며 “도덕성이 흔들리고 단절감을 느낄 때 유형화되어 나타나는 인간 감정의 풍경에 대한 지도를 그려보는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3개의 막으로 구성된 이 연극은 남자와 여자, 나아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들이 점차 붕괴되는 모습을 통해 무너지는 인간성과 신뢰에 관해 되묻는다. 또한 그로 인해 자신의 삶 속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응답 없는 질문과 고백이 하나씩 쌓여간다.

이미 결혼을 했지만 배우자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색다른 자극을 원하는 부부, 늘 자유로운 사랑을 원하며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여자, 사랑에 집착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남자 등 표면적으로는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한 부분은 결핍된 현대인의 다양한 모습이 극 전반에 흐른다.

각 막에 걸쳐 서로 교묘하게 연결된 9명의 등장인물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만나게 됨으로써 극적 긴장감이 형성되는 구조다. 같은 시간, 정반대의 상황에 처한 인물이 내뱉는 짧고 중의적인 대사가 오버래핑 되며 인물간 신뢰와 믿음이라는 극의 주제가 더욱 강렬하게 객석에 전달된다.

무엇보다 외로움, 불안, 집착, 부정, 소외감 등 도덕성이 흔들리고 단절감을 느낄 때 나타나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들이 미스터리한 분위기 속에서 다뤄지면서 보다 극적인 무대를 연출한다. 작품이 지닌 메시지를 더욱 극대화하는 연극적 장치가 여느 작품과 차별화되며 재미를 더한다.

한 공연에서 9명의 캐릭터를 단 4명의 배우가 모두 소화해야 하는 1인 다역의 독특한 구성은 배우 개개인의 역량과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 또한 한 배우가 연기하는 두세 개의 전혀 다른 캐릭터는 극의 메시지를 깊게 전달한다.

극은 두 갈래 이야기를 다룬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색을 지니며, 각 막은 네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그렇다고 해서 각 막이 서로 동떨어져 있지 않아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이질감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답이 안에 있는데,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다. 이야기는 앞으로만 향해 가지 않는다. 옆으로 튀거나 역행하기도 한다. 이미 보았던 장면을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안개 같기도 하고, 미로 같기도 한 심리는 개막에 앞서 공개된 포스터에서도 잘 드러났다. 포스터에서는 ‘마음속의 말’이라는 의미의 제목과 ‘잃어버린 자들의 고백’이라는 부제가 어울리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풍겨났다. 소통의 부재로 어긋나는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 내용을 표현하듯, 남자와 여자가 각각 상대방에게 조심스럽게 고백하며 이야기하는 입이 보는 이의 시선을 모았다.

이 작품은 그동안 연극과 뮤지컬을 기반으로 스크린과 TV를 오가며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여온 이승준, 강필석, 김종구, 정문성, 전익령, 강지원, 김지현, 정운선 등 ‘믿고 보는 실력파 배우’들이 대거 무대에 올라 이목을 집중시킨다.

연극 <프라이드>, 뮤지컬 <심야식당>, <난쟁이들>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관객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온 김동연이 연출을 맡아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표현하기 어려운 인간의 복잡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아마도 관객들은 극장을 나설 때, 극중 인물을 하나둘씩 자신의 머릿속에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는 작가가 자신에게 던졌던 것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것인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Writer 최현지 Cooperation 수현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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