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과 오물분노를 쥔 손이 먼저 다친다
결국 분노의 윤리는 간단하다. 뜨거움을 정의로 착각하지 말 것, 더러움을 용기로 오해하지 말 것. 불을 쓰되, 손을 태우지 말 것. 때로는 가장 강한 응수는, 무기를 내려놓고 기준으로 서는 일이다.
결국 분노의 윤리는 간단하다. 뜨거움을 정의로 착각하지 말 것, 더러움을 용기로 오해하지 말 것. 불을 쓰되, 손을 태우지 말 것. 때로는 가장 강한 응수는, 무기를 내려놓고 기준으로 서는 일이다.
결국 판을 바꾸는 것은 큰 목소리가 아니라 정확한 절차, 즉흥의 열기가 아니라 길게 쌓인 신뢰여야 한다. 수수함은 태도이고, 전략은 책임이다. 좋은 목적은 좋은 방법을 요구한다. 원칙을 전략으로 만들고, 절차를 공익의 기술로 바꿀 때,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그 자리는 다시 제 이름을 되찾는다.
순수한 의도만으로 공동체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이 최근의 경험을 통해 무너졌다. 일부 정치적 행위자들이 원칙을 훼손하며 신성한 합의의 장을 오염시키는 것을 목격하며, 선의를 가진 이들의 정치적 무능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이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새긴다. 명분과 실리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선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진흙탕에 들어가 싸우는 ‘정치적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순수함은 치열한 현실 속에서 싸워 이길 때 비로소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자신을 향한 친절과 배려가 진심인지, 이해관계 때문인지를 구별하지 못한 채 그것을 과대평가하는 상황이 종종있다.
나는 예수가 아람어, 히브리어, 헬라어를 넘나들며 말을 건넸던 장면을 떠올린다. 민중의 언어로 속삭이고, 전통의 언어로 경전을 읽으며, 제국의 언어로 세계와 맞섰던 그의 입술은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었다. 언어는 그 자체로 권력의 경계, 정체성의 울타리, 사회 구조의 틈새를 드나드는 실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