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그리고 사람을 품다

등 만드는 사람, 등축제를 꿈꾸는 사람. 윤성재 작가는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했다. 제주에 살다 제주의 문화와 신화에 매료되고, 한지전통등연구소 ‘반딧불공작소’에서 등을 만들며 제주를 이야기하는 사람. 제주 동자석 캐릭터 ‘쿰자’를 만들고 제주 예술인들과 주민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인 ‘쿰자살롱’을 만든 사람. 그는 꿈꾼다. 일상에서 보지 못한 판타지와 같은, 남녀노소 춤추고 노는 등축제가 벌어지는 그 날을. 축제로 향하는 그는 제주 그리고 사람을 품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낮에는 흙집을 짓고요. 오후에는 캐릭터 일을 하고 있어요. 제가 살고 있는 집에 마당이 넓어서 거기다 집도 짓고 친구도 와서 살면 자연스럽게 공동체처럼 되지 않을까 해서 흙집을 짓고 있고요.
캐릭터 일은 제가 제민일보에 웹툰을 연재를 하고 있거든요. 쿰자살롱도 운영하고. 저녁에는 매주 금요일 밤에 스토리클럽이라는 인문학강좌를 열고 있어요.

 

제주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스쿠버다이빙 강사로 내려왔어요. 여름에 한창 일을 하다가 겨울이 되니까 일이 없어서 전공 따라서 광고기획사에 취직했어요. 한 삼사년 일을 했나? 너무 힘들더라고요. 서울의 바쁜 생활이 싫어서 제주로 왔는데 똑같이 살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해서 한지공예를 배우러 다시 서울에 올라갔어요.

 

다시 제주로 내려온 이유가 있나요?
올라갈 때부터 제가 하려고 했던 게 신화에요. 제주도는 신화가 잘 발달돼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신화 소재를 한지 조명으로 만들어서 축제까지 연결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등 만드는 걸 배우고 내려와 신화 작업을 하려고 보니 신들이 어떻게 생긴 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신들을 스케치 하다보니까 캐릭터가 개발됐고 캐릭터 사업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제주의 매력을 제대로 발견하신 거네요.
처음에 제주에 왔을 때는 자연이 너무 좋아서 살았거든요. 근데 한 삼사년 지나니까 바쁘기도 하고 자연을 볼 기회도 좀 줄었지만, 새로운 것들이 보이는 거예요. 제주의 돌 문화라든가 제주의 음식이라든가. 육지하고 다른 독특한 것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자연보다는 이제는 그런 문화적인 것들의 매력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반딧불공작소
한지전통등 디자인 공방

 

딧불공작소. 이름이 예쁜데요. 어떤 뜻이죠?
제가 살고 있는 마을이 반딧불이가 많은 마을이에요. 또 제가 등을 만들고 있기도 해서 이름을 반딧불공작소라고 지었어요. 등은 무언가를 밝혀주는 역할을 하잖아요. 반딧불공작소도 뭔가 밝혀주거나 희망이 되거나 이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반딧불공작소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희망’, ‘희망을 만드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전통등에서 표현하는 것들이 있나요?
과거에는 자기 집 앞에 등을 달 때 집에 병든 노인이 있으시다 그러면 액운을 물리치기 위해 호랑이등을 달았어요. 과거시험을 봐야하는 사람이 있으면 등용문을 상징하는 잉어등을 달고요. 이런 식으로 등마다 다 의미가 있고 이런 등을 문 앞에 걸어둠으로써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했었죠. 근데 그 역사도 일제시대 때 많이 사라졌다가 제가 근무했던 한국전통등연구원에서 1997년 이정도 부터 복원작업을 한 거예요. 그래서 복원이 좀 됐죠.

 

한지와 다른 등의 차별점은?
전통에 변형을 많이 한 거죠. 흔히 아는 팔각등, 잉어등 등을 변형해서 현대적으로 만든 것. 또 한국전통등의 특징은 상징성이죠. 등마다 상징성이 있고, 제의성도 좀 있는 거 같고.

 

 

특별히 한지전통등에 매료된 이유가 있나요?
사실 등을 만드는 것 자체에서 매력을 느낀다기보다 만들어진 걸 가지고 축제를 만드는 거에 저는 매력을 느끼거든요. 일본의 아오모리 네부타라는 축제가 있거든요. 저는 그런 걸 만들고 싶어서 등을 채택한 거예요. 만들다보니까 대나무 깎는 것도 그렇고 골조 만드는 것도 그렇고 약간의 명상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하나에 집중하게 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그런 과정인 거 같아요.

 

아오모리 네부타는 어떤 축제인가요?
일본축제는 어떻게 보면 살아있는 축제죠. 사람들이 직접 (등을) 끌고 다니고. 축제를 위해 마을에서 모금을 해요.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다 자발적으로 참여하고요. 그에 비해 한국의 축제는 아쉬운 점이 너무 많은 거예요. 청계천 축제를 즐기러가진 않죠. 보러가죠. 저도 그 축제를 보고 되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등을 만들다 우연히 가게 된 축제인데 되게 좋았던 거 같아요. 아오모리 네부타도 그 지역의 신화를 컨텐츠로 성공시켰고 그게 일본을 대표하는 축제가 되었으니까 저도 제주도 신화를 가지고 붐을 만들고 한국을 대표하는 혹은 세계적인 축제를 만들고 싶어요.

 

작업과정이 궁금해요.
작업실은 중문 쪽에 있고요. 일단은 자기가 원하는 디자인을 스케치하고 스케치랑 비슷한 자료를 수집해요. 그걸 보면서 뼈대를 만들고 중간에 전구를 넣고 뼈대 위에 한지를 한 장씩 붙이죠. 그 다음에 동양화 채색을 하고 방수를 해서 마무리를 해요. 뼈대가 반이고 나머지가 채색 25%, 종이 25%예요.

 

가장 좋아하시는 작업이 있으시다면?
구름등 좋아해요. 구름을 시리즈로 계속 만들고 있거든요. 스탠드도 있고 크고 작은 것들이 있어요.

 

작가님에게 등은 정말 특별한 거 같아요.
등은 제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 매개체, 도와주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쿰자
제주도 동자석 캐릭터

 

쿰자를 소개해주세요.
쿰자는 제주 동자석 캐릭터고요. 사라져가고 있는 동자석 원형에 대해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제주어로 ‘쿰다’라는 말이 있어요. ‘품에 안는다.’ 이런 뜻이거든요. 그걸 친근하게 변형해서 ‘쿰자’라고 이름 지었어요.

 

이름도 귀엽고 캐릭터도 귀엽네요. 쿰자살롱의 마스코트이기도 하고요.
네. (웃음)

 

쿰자는 언제 태어났나요?
쿰자생일은 2013년 8월 1일이고요. 쿰자살롱 오픈은 2014년 8월, 작년 여름입니다.

 

쿰자 종류가 정말 다양한데 이유가 있나요?
동자석은 제주도 무덤 옆에 망자의 시중을 들어주는 시중꾼이에요.
가슴에 지물이란 걸 들고 있는데 실제로 동자석 지물이 여러 가지에요. 창을 들고 있는 것도 있고 숟가락 들고 있는 것도 있고 술잔 들고 있는 것도 있고. 원형자체가 돌하르방과 차이점이라면 다양성이 있다는 거예요. 돌하르방은 딱 한 가지 형태인데 동자석은 원형 자체가 이야기가 많지요. 그래서 쿰자 원형을 가지고 제주도에 있는 다양한 것들을 표현해보자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캐릭터를 점점 늘리려고 해요.

 

 

쿰자 개수는 얼마나 되나요?
40개 정도 돼요.

 

그 중에 가장 좋아하는 쿰자는?
한라봉, 해녀, 테우리도 좋아하고 용과도 있고요.

 

제주도 관련된 게 많네요.
네. 어떻게 보면 지역캐릭터이기도 하니까 지역을 잘 알리는 부분도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일본 캐릭터 ‘가오나시’를 닮은 것 같기도 해요.
가오나시를 좀 뛰어넘어야 하는데. (웃음)

 

쿰자 상품도 보이네요.
일본의 쿠마몽 캐릭터를 많이 벤처마킹했어요. 쿠마몽이 일본전체에 금방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가 라이선싱을 오픈한 것이에요. 쿠마모토현의 캐릭터가 되어 그곳의 특산물이나 공예품이과 콜라보가 된 거예요. 그 제품이 전국에 유통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알려졌거든요. 저도 제주도 특산물과 공예품을 브랜드화해서 쿰자 캐릭터를 유통하려 준비하고 있어요. 작년에 친환경 유기농감귤박스를 캐릭터 형태로 개발해서 유통했고 꿀, 톳, 감귤주스 등도 새롭게 개발했어요.

 

 

선정 기준은요?
친환경 농가 인증 받은 곳 위주로 선정해요. 제품도 세라믹토이나 페이퍼토이 등 최대한 플라스틱을 안 쓰고 만들 수 있는 제품들이고요. 친환경적인 나무로 만들고 재활용 가능한 재료를 써요. 쿰자가 수호신이니까 건강도 지켜주고, 나아가 환경도 지켜주는 그런 개념이죠. 동화책 만들기, 애니메이션 쪽도 개발하고 있어요.

 

애니메이션은 제주 관련 이야기를 담고 있나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도 제주도 캐릭터라고 해서 너무 제주스럽게 만들면 유통이 어려워요. 그래도 일단 동자석 캐릭터 자체가 제주적인 거고 제주도 배경을 조금씩 넣었어요. 7세에서 10세 정도의 아이들을 타켓층으로 잡았고요. 환경적인 이야기가 좀 들어가 있어요.

 

언제쯤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을까요?
잘 진행이 되면 올해 말에 완성될 거 같아요.

 

 

쿰자살롱
아트샵&카페+α

 

쿰자살롱은 어떤 곳인가요?
쿰자살롱은 제주에 살고 있는 이주민과 현지인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의식주라는 주제로 뭔가 이로운 활동,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기술을 공유하고 서로의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졌죠.
이게 어떻게 보면 공동체의 다른 개념이기도 한데요. 꼭 모여 살아야 공동체는 아니잖아요. 이런 공간이 공동체이기도 한 거죠.

 

쿰자살롱의 입점 브랜드와 아티스트들을 소개해주세요.
입점작가 분들은 모두 제주도에서 활동하시는 분이에요. 제주도 마크라메 매듭공예 전문가 키미에 작가와 아카네손 작가님, 천연염색 ‘색이고와’ 작가님도 계시고 루니라고 수제 악기 만드는 친구도 있고요. 씨앙망태를 만드시는 김석환 할아버지와 담화헌 옹기공방의 작가님, 밀랍초를 만드는 로자 작가님이 계시고요. 프랑스 ‘재연마고’ 작가와 멕시코 현대아트 판화가 우리엘마린(Urielmarin) 작가님의 작품도 전시돼 있어요. 아, 한지전통등 디자인공방 ‘반딧불공작소’의 저도 있고요.

 

어떻게 해서 이곳에 쿰자살롱을 열게 되었나요?
여기가 구도심인데 많이 침체됐죠. 원래 제주대학교 병원이 있었는데 이주를 하면서 여기 상권이 무너진 거예요.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시에서 이 곳에 예술인거리를 만들기로 했어요. 점포 열 개를 꺼내놓고 입점심사를 받았는데 운 좋게 선정이 돼서 들어오게 됐어요.

 

 

 

어쩐지 골목에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거리 이름이 예술인거리인가요?
아뇨. 아직 명칭은 아직 못 정했어요. 자칭 ‘쿰자로드’라고. (웃음)
일본에 ‘게게게 노 키타로’ 로드가 있거든요. ‘게게게 노 키타로’는 한국으로 치면 전설의 고향처럼 무서운 애니메이션이거든요. 거기 나오는 요괴들을 기반으로 해서 캐릭터거리를 만들었어요. 거기도 구도심처럼 침체됐었는데 캐릭터거리가 들어서서 연간 방문객이 많이 늘어났어요. 저도 쿰자 캐릭터를 가지고 열 개 점포 말고도 캐릭터 콘텐츠를 거리에 좀 넣어보려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미용실에 쿰자가 머리를 해주고 있는 그런 POP 같은 거 창문에 붙여주고요.

 

 

씨앗부스
제주 토종씨를 빌려주는 작은 도서관

 

쿰자살롱이 문을 연지 1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얼마 전에 했던 씨앗부스 행사요. 한국의 토종씨앗이 없어지지 않게 유지하자는 모임이거든요. 제주도에는 제주 토종씨앗을 빌리는 씨앗도서관이 있어요. 도서관처럼 씨를 빌려와서 심고, 자란 수확물의 씨 일부를 다시 돌려주는 개념인데 씨앗도서관에서 쿰자살롱에 부스를 하나 낸 거죠. 다른 입점작가들처럼. 근데 무료인거죠.

 

씨앗부스 행사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궁금해요.
제주도 친환경 농법에 대해 강의를 했고요. 공연도 하고 씨앗부스 퍼포먼스도 했어요. 퍼포먼스가 가장 좋았던 거 같아요. 모인 사람들이 다 같이 소리를 내면서 씨앗부스에 씨앗을 하나씩 갖다 넣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의미 있었던 거 같아요. 일 년 쯤 되어 자리가 잡혀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오십 명 정도 오셔서 가게 안 뿐 아니라 바깥에서도 사람들이 서서 보셨거든요.

 

쿰자살롱을 보면 작은 공간에서 많은 활동이 벌어지는데요. 쿰자살롱의 힘이 있다면?
네트워크죠. 이주민들 그리고 제주사람들. 제가 인문학 강의하는 것도 그런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죠. 제주도는 네트워크 섬입니다.

 

다양한 온라인 활동을 하시는 것도 네트워크 관련된 건가요?
그렇죠. 결국에. 사실 따지고 보면 제가 하는 건 별로 없어요. 친구들과 같이 하고 있고 홍보물도 아는 분이 해주시고 그런 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 거죠.

 

십년, 이십년 후에 작가님은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여러 가지를 하고 있지만 결국엔 한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거거든요. 문화를 모으고 그 문화를 통해 축제를 하는 거. 축제라고 하면 폭이 좁은데 사실 축제라는 건 모든 게 될 수 있다고 봐요. 좁게 얘기하면 축제지만 넓게 얘기하면 제주도의 신화이기도 하고 문화이기도 하고 다 엮여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인문학 강의도 그렇고 쿰자 캐릭터도 그렇고 축제 안에 들어가는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아마 이십년 뒤에는 재밌는 축제도 만들고 단체도 활성화해서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가님이 꿈꾸시는 축제의 모습은?
일상에서 보지 못한 판타지. 그런 게 있어야 한다고 봐요. 남녀노소 춤추고 노는 축제를 만들고 싶어요.

 

그 축제 꼭 가고 싶네요. 축제의 터는 제주도인가요?
네. 제주도만큼 신화가 발달된 곳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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